2023. 10. 21. 23:50ㆍ강원
깨달음을 얻는다?
'오대산 선재길'에서 '선재'란, 화엄경에 등장하는 젊은 구도자의 이름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 나섰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난 후, 진리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길을 나서자마자 예보에 없던 빗방울이 듣는다. 허허, 하면서 나선 길을 그냥 간다. 오대산 선재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면 그렇지. 충주시 지역을 벗어나서 원주시 지역으로 들어설 즈음부터 하늘은 벗어지고, 해님 얼굴이 맑게 빛난다.
단풍철에다 휴일. 교통량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월정사 앞 상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선재길 이정표를 찾아 들어선다.
'전나무숲길-월정사-산림철길-사고길-거제수나무길-화전민길-왕의길'
길은 오대천을 옆에 끼고 거슬러 올라간다. 저 물은 횡계를 지나고, 구절리를 지나고, 여량리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을 만나 조양강이 된다. 조양강은 정선 읍내를 지나 가수리에서 지장천을 만나 '동강'이 된다. 동강은 영월 읍내 끄트머리에서 서강(평창강)을 만나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내 고향 충주로 간다. 충주에서 달천과 만난 남한강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그냥 '한강'이 되어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흘러갈 것이다.
물빛도 맑고, 물소리도 맑고, 하늘도 맑다. 절정에 이른 단풍 빛깔도, 산빛도, 허공도 맑고, 맑다. 그렇게 맑은 빛에 젖어 맑은 몸짓으로 흐른다. 세속을 잊고, 나를 잊고, 그저 그렇게 산이 되고, 숲이 되어 너울거린다.
상가 주차장에서 몇 걸음 지나서부터 월정사로 가는 길에 전나무숲이 그윽하다. 깊고 그윽한 그늘 속에 그윽한 무엇이 흐르는가. 그게 무언지 모르는 대로, 그윽한 세계로 빠져든다.
월정사 절집 마당에서 잠깐 서성이다가 걸음을 옮긴다. 계속해서 물가로 이어지는 길은 고운 단풍 바닷속을 헤집는다.
가는 길에 이름표들이 있다. 선재길, 사고길, 화전민길, 왕의길. 이름마다 사연을 안고 있다.
산림철길: 일제강점기 때, 벌목한 나무를 실어나르던 협궤 철길이 있었다.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소나무, 참나무, 박달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주문진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내어갔다고 한다
사고길: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인 오대산사고가 있었고, 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했었다고 한다.
거제수나무길: 미끈하게 죽죽 벋은 거제수나무들을 본다. 재앙을 막아주는 수액이 나온다는 거제수나무는, 얼핏 보아 자작나무로 여기기 쉬우나, 나무줄기의 껍질이 자작나무처럼 하얗지 않고 노르스름한 빛이 돈다.
화전민길: 화전민 터 두 곳을 지난다. 두 번째 화전민 터에서 허물어진 돌담을 본다. 돌담 옆에 안내판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150여 가구 300여 사람들이, 겨울에는 벌목 여름에는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왕의 길: 어디 가서 왕을 만났었다고 말하지 마라. 임금님께서도 문수보살을 만났었다고 말씀하지 마옵소서. 세조가 상원사 앞 개울에서 몸을 씻을 때,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있다. 세조는 자주 행차하였고, 많은 설화를 남겼다.
상원사 앞 주차장. '선재길' 종점이다. 승용차와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길게 늘어선 줄 끝을 잡아 노선버스를 기다린다. 콩나물시루가 된 버스 안에도 북새통이다.
그래, 13.19Km를 걸어오면서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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