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필 무렵에 만난 천사

2008. 2. 27. 08:44충청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 길 곳곳에 우리를 지켜 주는 천사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이 뒤늦게 깨달을까 말까 하게.


그 중 하나.

십오 년쯤 전에 백운면 명암리에 낚시를 하러 갔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그곳에서 쏘가리가 많이 잡힌다는 얘기를 듣고 욕심을 냈던 것이다. 낚시가방을 메고 삼탄 역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가다가 터널을 만났다. 어떻게든 굴을 통과하기로 하고 그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한 사나이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굴을 빠져 가시려고요?”

“예!”

“불은 있습니까?”

“예!”

“신문지는요?”

“예!”

“신문지 좀 줘 보세요.”

“예!”


나는 철길 레일을 밟고, 그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문지를 말아 쥐고 터널 벽을 긁으면서 굴속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갔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더 이상 깜깜할 수 없는 칠흑 어둠속에서,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 터널 중간 중간 벽에 파 놓은 홈으로 피한 우리 코앞으로 쌩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열차가 지나갔다. 레일을 밟고 가는 나도 느끼지 못한 진동과 불빛을 재빨리 알아채고 나를 끌어당긴 그 사나이. 그를 만나지 못한 채 무모하게 굴속으로 들어섰더라면? ‥‥‥!


돌아올 땐 굴 빠질 엄두를 내지 못 했다. 물가를 굽이굽이 돌고, 산등성을 넘어 삼탄으로 와서 시내버스를 탔다. 굴을 빠져 갈 때는 30분~40분 걸렸던 것 같았는데, 강변 허리에 띠를 두른 듯 피어 있는 철쭉과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보라가 어우러지는 경치 속에서 두어 시간은 걸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사나이가 천사였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그 때 그렇게 만났던 그 사나이.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유유히 사라져간 사나이! 지금, 나는 그를 천사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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