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08:49ㆍ충청
또 비가 오락가락하는가?
2005년 7월 17일 아침 아홉 시. 호암동 범바위슈퍼 앞에서 걸음을 시작하여 약수터 쪽 길을 잡는다. 빗방울이 잦아지자 이내 우비를 꺼내 입는다. 전, 이, 유, 이.
청주나 서울 쪽에서 충주시내로 들어오다가 달천벌에서 보면, 시가지 뒤로 이 고을을 감싸면서 펼쳐지는 능선 세 개 - 대림산과 남산과 계명산. 그 중 남산과 계명산 능선을 종주하겠다는 것이다. 여름방학 맞이로. 올해로 세 번째인가, 아니 네 번째다.
몇 해 전, 충주중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 몇이 시작한, 여름방학을 맞는 행사다. 첫해엔 범바위에서 출발하여 남산 깔딱고개 쯤에서부터 비를 맞기 시작했고, 마즈막재 쯤에선 속옷까지 흠뻑 젖었었다. 대원고등학교 부근 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었는데, 어떻게 된 사람인지가, 우의는 입었지만 온몸을 거센 빗줄기에 맡긴 채 계명산 너머 두진아파트까지를 완성해 놨었다. 그렇게 시작한 걸음이 다음 해,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가 올해, 지금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중 세 번을 비가 동참을 한다.
대림산에는 봉화터가, 남산에는 산성이, 계명산에는 또 하나의 봉화터를 가진 봉우리가 있다. 심항산 또는 종뎅이산이다. 지금은 해맞이동산 또는 일향산이라고 불리는 봉화터는 계명산 휴양림에서 충주호 쪽으로 내민 곳에 있다.
범바위 슈퍼 앞에서 시작,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내장을 씻으니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오르고 또 오르고, 넘어서고. 깔딱고개에 이르니 임, 신 두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 임선생님이 가져 온 참외를 한 쪽씩 먹고 산성으로 향하는 호젓한 길로 빠져든다. 이선생님 왈,
“산 위에 이렇게 좋은 길은 참 드문 것 같아요.”
그 좋다는 의미를 어떻게 써야 할까? 그윽하다? 호젓하다? 편하다? 어쨌든 꽤 오래 은근하게 이어지는 숲 속 오솔길을 지나 산 정상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약수터를 지나면서 비가 그치는가 했는데, 이제 햇빛이 얇은 구름을 통해 비친다. 내리막길에서 절절매며 지르는 비명과 웃음소리는 늘 그러하다. 타박타박 말없이 내려가는 걸음도 물론 한 모습이고.
마즈막재에서 차선생님과 합류. 늦게 온 죗값으로 가져온 깡통맥주가 역시 제 맛이다. 캬~~~!
휴식을 끝내고 계명산에 오르면서 악몽을 씹는 전, 차 선생님. ‘육수’를 철철 떨어드리는 유 선생님. 연신 땀을 훔쳐내면서 주독을 빼낸다는 신 선생님. 그런데 땀 한 방울 안 흘리면서 나는 듯 걷는 이 선생님 ― 세상에 이런 일이?
계명산 정상에서 충분한 휴식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하종대 마을 쪽으로 길을 잡는다. 첫 두 해엔 두진아파트, 세 번째 해는 민마루 충주댐, 네 번째 올해는 하종대다. 울창한 숲 속, 부러울 것 없는 기분으로 걷다 보니 확 트인 시야에 충주호가 쫘~악 펼쳐진다. 이야~! 이런 경치는 앉아서 보라는 건가? 발길 앞에는 멋들어진 바위가 나타난다.
하종대 마을에 이르니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진다. 시작과 끝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식당 마루에 앉아 시원소주에 붕어찜과 참매자조림을 시킨다. 오늘 산행을 자축하면서 잔을 든다. 짠~!
내일부터 1정 연수을 떠나는 임 선생님을 위하여,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전 선생님을 위하여, 연수를 신청해 놓고 못 가는 유 선생님을 위하여, 깡통맥주 사가지고 온 차 선생님을 위하여, 그리고 ‥‥‥. “위하여 !”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
(20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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