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08:46ㆍ충청
마즈막재-남벌-(임도)-살미면 하재오개-상재오재-성재-탑대-원직동-범바위.
아침 여덟 시쯤 출발. 임도가 끝나는 하재오개 동막골 길바닥에서 점심. 한낮 세 시쯤 범바위 도착.
이리 저리 걷다가 짝이 된 네 사내가 하루를 걸었다. 내륙 중앙 충주에서 동해까지, 서해까지 함께 걸었던 사나이들. 늘 하던 대로 그냥 걸었다. 쉬엄쉬엄 일곱 시간. 도저히 말로 전할 수 없는 산과 물의 조화 속을 걸었다. 연수동 고박사네서 뒤풀이를 했다.
마즈막재, 계명산 등산로 입구에서 신발 끈을 졸라매고 남벌로 향한다. 아주 겸손하게, 여기저기 피어 있는 찔레꽃 떨기들을 보면서 유행가 가락을 흥얼거린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그러면서 옛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생각한다. 호수는 종뎅이산을 비추고 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물 건너 저쪽에 마그실 농장 가든과 서운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그 중간에 요트장도 보인다. 저 밑으로는 충주댐과 선착장이 보인다. 남벌리에서 포장도로는 끝이다. 『鄕愁에젖은내故鄕남벌』이란 굵은 세로글씨를 중앙으로 하여 좌우에 그 사연을 적은 비석이 느티나무 그늘에 서 있고, 그 옆 감자밭에는 감자 꽃이 피어 있다.
남벌에서 하재오개까지 이어지는 7.6 Km 임도.
크고 작은 봉우리들에 갇혀 있는 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다. 먼 산에는 뿌연 안개가 서려 있어 선경인 듯 정신이 아득하고, 작은 가슴은 그를 담아내기에 벅차 감탄이 터지고, 터진다.
야 ~ !
와 ~ !
아 ~ !
고등학교 때, 밴드부 친구에게 악보를 보여 주고 배운 노래가 생각난다.
“내 고향 남쪽 나라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
보길도 예송리 쪽빛 바닷물이 생각난다.
옛사람은 그 잔잔한 물결을 보고 호수라고 했던가?
“‥‥‥. 지국총 지국총 어샤와,‥‥‥. 동호를 도라보며 서호로 가자스라. ‥‥‥.”
물과 산, 하늘과 햇볕과 바람. 별천지가 별로 있는 건가? “호이, 호이, 호이.” 빠른 3음보로 우는 새소리에 번뇌를 씻는다. 하느님은 산천의 아름다움에 젖었다 오라고, 그러면서 영혼을 씻고 오라고 우리 인간을 이 지구에 보낸 것인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순간 감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와 함께 오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못 오게 했으면 좋겠다.
작년 가을 국어 선생님들과 함께 갔던 그곳이 생각난다. 충주호가 쫘~악 펼쳐지는 곳. 동량면 하천리에서 금성 쪽으로 이어지는 길, 비포장길과 호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들.
상재오개 느티나무 아래 바위에서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을 호사시키면서 월악산 영봉을 바라본다. 잠깐 동안 재오개의 슬픈 전설을 생각해 보고, 바위 위에 새겨진 글자를 더듬어 보기도 한다.
급할 것 없이 허우적허우적 가는 발길과 두리번거리는 눈길을 허용하는 산과 물. 말이 없으면서 많은 말을 생각하게 하는 산과 물, 그리고 길. 인생은 나그네 길, 나그네가 길가 풍경에 감탄하면서 걷는 길.
(200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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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오개 전설
예전에,
재오개와 목벌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 외딴집이 있었다.
허름한 노선비가, 냉수를 대접하는 그 집 부인에게,
“비범한 인물이 탄생할 것이니 잘 키우시오.”
고개를 넘던 노선비가 다시 한번’ 주변 산세를 살피고는,
“웅지에 요절기가 있으니 애석한지고.”
부인이 해산할 때 고갯마루에 무지개가 서렸는데,
보라색 자리에 붉은 핏빛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태어난 아이는
세 살 때 쌀 한가마니를 들고,
다섯 살에 글을 지으며, 제갈공명 못지않은 병법을 논하였다.
소문을 접한 조정에서 두려움 끝에 재고개 산혈을 끊었다.
천기를 누설한 술자는 즉사하였고,
책을 읽던 아이는 별안간에 숨을 거두었다.
어미의 바람에 따라 아이의 시체를 마을 어귀에 매장하였다.
슬프고 원한에 찬 음성이 바람을 타고 흘러 퍼지니
듣는 사람마다 요절한 원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두들 모여 고개에 제단을 쌓고 동제를 올리니
슬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재주 있는 아기장사가 다섯 살에 요절했다'고 해서 '재오개(才五介)'.
또는, '선비가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고 해서 '재오개[再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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