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0:19ㆍ충청
― 짹짹, 찌르르 찌찌, 휘이익, 재잘재잘 ‥‥‥.
산새들 아침인사는 거르는 적이 없다. 꽤 오래 전부터 그리던 꾀꼬리봉을 찾아 나선 길, 억수계곡 깊숙이 들어서니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수문동 폭포로 이어지는 계곡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엔 “입산금지”, “과태료 50만원” 등의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철제 그물망까지 쳐져 있는 골짜기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몰라요.” 하면서 도망치듯 걸음을 서두른다.
― 법대로 살 수 있나요?
그 앞에 서성이는 중년 사나이가 있어 말을 붙이니, 대뜸 하는 소리다. 법대로 살 수가 없다? 그냥 흘려듣기엔 의미가 너무 큰 것 같아 곱씹어 본다. 인간이 정해놓은 법, 인간이 가르쳐 주는 법이 있고,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터득하게 되는 법이 있다. “법 없이도 산다.”고 할 때의 법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이다. 그런 법이 없어도 살아가는 법이 있는 법이다. 참된 법은 인간을 구속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참된 법을 거스르지 않는다. 아니, 자연스럽게 법대로 살아간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세상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 있어 수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인간 세상이 끝내는 파멸로 치닫지 않는 법이라고 믿는다.
꾀꼬리봉 역시 출입금지라는 것쯤은 알고 왔지만, 이 동네 주민인 것 같아 말을 걸어 본 것이다. 이리저리 묻는 말에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현장에 와서 용하구곡의 위치며, 꾀꼬리봉으로 가는 이쪽저쪽 등산로, 마을 이름 등을 듣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헤어진다.
― 꾀꼬리봉은 용하구곡의 내력을 알고 있다.
옛 사람들이 정해 놓은 용하구곡은 꾀꼬리봉 아래에 있다. 수렴선대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까닭이 있을 것이다. 억수계곡만 해도 사람들의 감탄이 그치지 않을 지경인데, 거기서 보면, 숨어 있어 잘 알지 못할 곳에 별천지가 따로 있다. 이틀 전, 갈은구곡에서와 같이 넋을 잃는다. 층층이 바위 바닥을 쓸며 흐르는 물은 물이 아니라 아주 곱게 갈려 물처럼 된 옥가루라고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넋을 잃었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읊조린 것이 시가 되었단 말인가? 하늘나라 선녀들은 이런 곳에 은밀한 비경을 만들어 놓고, 오르내렸던 것인가? 아니면 우연히 알게 되어 왕래했던 것이런가? 꾀고리봉은 선비들의 읊조림도, 선녀들이 목욕하는 내력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 찾아와서 마구 지껄이고, 방종하던 취객들의 행태도 보아왔을 것이다. 방자한 인간들이 지어내는 온갖 모습들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골짜기와 바람과 햇빛과 수목들의 너그러움도 꾀꼬리봉은 알고 있을 것이다.
꾀고리봉은 또, 저만치 든든하게 뻗쳐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있다. 대미산에서 구불구불 포암산 쪽으로 이어지는 대간 줄기가 장엄한 모습으로 늘 거기에 있는 것이다.
― 화창한 봄날에 함박눈이.
1032봉에서 눈을 맞는다. 화창한 봄 날씨에 올라온 산꼭대기에서 눈을 맞으니 또 한번 신선이 되어본다. 많이는 아니지만, 바닥에 쌓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펄펄 내리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허공 가득, 가물가물, 하염없이 내리던 때와 똑같은 기분에 젖어본다. 애초에 꾀꼬리봉과 용하구곡 정도를 생각했다가 욕심내어 대간으로 올라선 것이 이런 행운을 맞게 된 것이다. 내 어디가 이쁘다고 하느님께선 이런 행운을 선사하시는 건가?
엊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작정했다. ‘새벽미사를 보자.’ 그래서 혼자 걸었다. 꾀꼬리봉에서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1032봉으로, 거기에서 포암산쪽으로 가면서, 큰 봉우리 대여섯을 더 넘은 다음, 골짜기를 헤쳐 수문동 입구로 다시 왔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발바닥에서 가시가 돋는다?”
― 수문동 입구(09:20) - 관폭대 - 청벽대 - 선미대 - 꾀꼬리봉 - 1032봉 - 만수봉 삼거리 - 대판골 - 수문동 입구(15:20)
* 용하구곡 : ①수문동폭포②수곡용담폭포③관폭대④청벽대⑤선미대⑥수용담⑦활래담⑧강서대⑨수렴선대
(200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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