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0:16ㆍ충청
3월 24일 놀토. 하루 종일 비.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는 가늘면서도 힘이 있다. 어떤 때는 이슬 내리듯 몸에 와 맺히기도 한다.
뭇 생명을 깨우는 차분한 봄비, 그 속을 걷고 있는 미사모. 대지에 뿌려지는 생명수를 마중 나온 미사모. 온 누리를 덮고 있는 상큼한 안개 속을 저벅저벅, 두런두런 걸어간다. 누구는 웃으면서 “정예 세 명”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빗속에 무슨 청승이야?”에 대한 방어용으로 준비하는 말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겨울 땅속 깊숙한 곳에서 그리움으로 꿈틀대던 봄, 가물가물한 기운으로 다가오던 봄, 시샘하는 바람에 잠깐 움츠리는 것도 같던 봄이 눈앞에서, 발밑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그 위에 봄비가 내리고 있다. 생강나무는 벌써 노란 웃음으로 수줍어하고, 버들개지는 눈썹 가득 비이슬을 담고 있다.
아주 얌전하게 내리는 봄비가 잎 봉오리 꽃봉오리들을 타닥타닥 때리고 나면 맑은 햇볕 아래서 산천의 빛깔은 더 살아날 것이고, 이내 흐드러진 잔치마당으로 내달릴 것이다.
제천 땅 도기리에서 모여치를 넘어 단양 땅 벌천리로. 상선암을 지나 도락산 입구에서 밥을 먹는다. 소주도 한잔 털어 넣고, “캬~” 소리를 낸 다음 중선암을 향한다. 회산리에서 희마리재를 넘으니 양당리이다.
다시 제천 땅, 대전리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따른다. 살짝 덥힌 두부와 곁들인 김치와 양념간장이 시골 가겟방 분위기와 어우러진다. 비 내리는 산골 마을이 ‘한 멋’을 그려낸다. 다시 도기리. 구름과 안개와 저녁 어스름이 섞인다.
문수봉, 용두산, 도락산이 가까이에서 안개를 이고 있는 길. 저 만치에는 대미산―황정산―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뻗어가고 있는 길. 단양팔경으로 이름 난 상선암과 중선암과 저 밑 하선암으로 이어지는 단양천을 따라가고 있는 길. 모여치와 희마리재 그리고 또 하나, 고개 셋을 넘었다.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섯 시 반까지.
― 그래, 이렇게 걷는 거야.
(200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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