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 하다가[금수산]

2008. 2. 27. 10:13충청

금수산 옆 망덕봉. 평평한 마루에 새하얀 눈이 가득 깔려 있다. 그 한가운데 앉아 시루떡 두어 조각으로 점심을 먹는다. 주변 모든 나무들은 가지에 눈꽃을 달고 있고, 바람은 나뭇가지들을 마구 흔들어댄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엔 햇살만 따사로울 뿐 고요하기만 하다. 신선이 된 것인가?


2007년 2월 3일 토요일.

금수산 꼭대기엔 하얀 비단이 곱게 널려 있다. 저 건너 바위병풍엔 듬성듬성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이쪽 아래엔 충주호 푸른 물줄기가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며 햇빛을 반사한다. 창공에선 겨울햇살이 눈부시다.


상천리에서 올라왔다. 온통 눈꽃에 덮여있는 금수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망덕봉으로 향한다. 동쪽으로는 단양군이고, 서쪽으로는 제천시. 단양과 매포가 보이고, 청풍 쪽이 보이고, 남한강 줄기―충주호가 보인다. 망덕봉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선다. 가던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신선이 되어서 그런지 주변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길은 있되, 사람 흔적이 없다. 푹푹 밟히는 눈은, 저 아래서와 다르게,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듯하여 공중을 떠다니는 기분이다. 오르락내리락,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기기묘묘하고, 햇빛은 어떤 마력을 풍기고 있다.


이따금 둘러보니, 검푸른 물줄기는 멀리까지 이어지고, 그 너머엔 작은 산과 마을과 논밭 들이 널려 있다. 응달엔 눈이 허옇다. 저쪽, 산꼭대기에서 가까운 기슭에 정방사가 보인다. 그곳 해우소에 앉아 바라보는 경치가 기막히게 아름답다고들 하는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쪽이다. 이래저래 오늘은 선경 속을 노니는 신선이로다. 선경 속에서 바라보는 정방사 쪽 경치 또한 선경으로 치자.


아뿔사! 신선 기분이 지나친 건가? 잠시 길어서 벗어나 바위벼랑에 나섰다가 떨어져 죽을 뻔했다. 지능선에 있는 바위를 더듬다가, ‘길을 한번 내 볼까?’ 하고 덤벼든 것이, 그냥 세상 하직하는 길이 될 뻔한 것이다. 단 한 발짝 참은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붙들게 되었다. 한참을 내려온 게 아깝지만, 다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비탈과 싸우다보니, 땀으로 범벅이 된 꼴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에이, 신선은 무슨 얼어 죽을 신선?”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상천휴게소 주차장(09:35)-금수산(1015.8m/11:20)-얼음골재-망덕봉(926m/12:00/점심)-능선-망덕사 입구(14:00)-하천리-상천리(14:30)

(200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