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에 봄기운이[치악산]

2008. 2. 27. 10:11충청

2007년 1월 30일.

간밤엔 민박집에서 벌레들과도 함께 놀다가 그대로 잔다.

세 시쯤 깨어나 두어 시간 뒤척이다가 짐을 꾸린다.

구룡사 입구에서 시작하여 ‘비로봉―향로봉―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치악산 주능선을 걷는다.

‘은혜 갚은 꿩’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상원사를 거쳐 성남통제소로 내려와 막걸리를 한잔 한다.

안개와 눈을 동무삼고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봄기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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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섣달 열이틀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캄캄함 어둠 속에 구룡사 입구에서 치악산으로 들어간다.

눈이 좀 올 것이고, 날씨가 추워질 것이란 예보가 있었다.

물론 대비를 했고, 야무진 마음으로 대든 걸음이다. 유랑, 최랑, 이랑.


치악산 사다리병창은 험하고 가파르기로 이름난 길.

겨우내 쌓인 눈이 깔려 있어 미끄럽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바람은 눈 더미에서 가루를 가져와 허공에 흩뿌리고, 안개는 바람결에 얼음 알갱이를 슬쩍슬쩍 풀어 사람의 얼굴을 후려 때린다.


비로봉 돌탑을 에워싼 안개와 바람에 눈발이 섞인다.

사방을 둘러 봐도 자욱한 안개뿐, 나그네들은 “오늘도 걷는다.”

안개와 눈과 사나운 바람이 매섭게 설쳐대는 치악산 종주 능선.


요란한 바람 소리 사이사이로 작은 소리가 아련하다.

“나, 봄이야.”

가슴이 설렌다.


그래, 입춘이 낼모레지.

맞다.

말라붙은 가슴에 촉촉한 기운이 찾아든 게 며칠 됐다.

아! 드디어 봄이 온단 말이지?


구룡사 입구에서부터 헤쳐 온 새벽어둠은 비로봉에서 벗어지고,

안개가 대신하여 먼 경치를 감추더니, 남대봉에 이르러서야 물러간다.

상원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엔 밝은 세상, 눈이 하얗게 쌓였다.


오늘 하루, ‘눈’ 맛을 실컷 봤다.

푹푹 빠지는 눈길, 기세 좋게 몰아치는 눈바람, 하얀 나뭇가지, 뿌연 안개, 온통 하얀 산.

실컷 밟았고, 실컷 맞았고, 실컷 빠졌다.

그 속에 ‘봄’이 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 봄이 온단다.”


구룡사 입구(05:30)―사다리병창―비로봉(08:30)―능선길(아침 겸 점심)―향로봉―남대봉(13:30)―상원사―성남통제소(15:00) / 21.1 Km

(200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