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니 비가 그치다[두릉산-팔봉산]
2008. 2. 27. 10:26ㆍ충청
오랜만에 산에서 비를 맞는다.
푸른 비를 맞는다.
5월 12일 아침, 노루목 다리 건너, 폐교된 향산분교 뒤편에서
두릉산을 넘어, 수주팔봉산으로 가는 길.
맑은 초록 산 빛에 잔바람이 불어
살랑살랑 나뭇잎 가볍게 일렁이는 숲에
타닥타닥, 투닥투닥 빗방울 듣는 푸른 소리.
눈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기운을 받아
한 그루 푸른 나무가 되어 걸어간다.
안개가 살짝 걷히니 팔봉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마을을 반쯤 휘감아 도는 강물이 가랑비에 젖는다.
첨벙첨벙 강물을 오르내리면서 물고기사냥을 하고 싶다.
보글보글 매운탕에 소주 한 잔이 마냥 그립다.
문강리로 내려와서 아스팔트길을 걷는다.
산봉우리를 감싸는 듯 벗어지는 듯한 저것은
안개인가 구름인가.
푸른 산허리에 흰 줄기로 서려서 유유히 떠다니는 저것은
구름인가 안개인가.
어느새 비는 그치고 바지가랑이는 보송보송 말라 있다.
왕달악기를 지나고 팔봉교를 건너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싯개 다리 밑에선 팔뚝만한 눈치놈들이
벌떡벌떡 흰 배를 내보이며 한가로이 놀고 있다.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놀려보겠다는 건가.
눈치 없는 놈들 같으니.
호림산장에서 그예 매운탕 맛을 보고야 만다.
좋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심신이 고단하던 터에
모든 것 접어두고 이렇게 나오니 참 좋다.
아예, 저 들판에, 산속에, 물가에 묻혀 산다면.
그래도 한결같이 좋을까?
20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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