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0:31ㆍ충청
구병산은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사기막 마을 바로 뒤에 정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발 높이 876.5 미터. 옆에는 진짜 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시루봉이 단정하게 서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서, 바위바닥 위를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보면서 숲 속으로 들어서자 까치수영 몇 줄기가 하얀 웃음으로 맞아준다. 벚나무 열매가 검게 익었기에 따서 입에 넣으니, 달고 상큼하다. 산뽕나무 오디도 검은 빛 윤기가 흐른다. 덤불딸기는 끝물이고, 나무딸기가 막 익기 시작한다.
‘그래! 여름엔 산이야.’ 가파른 길을 서두름 없이 올라가면서, 여름 산 공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엊그제 장마가 시작됐고, 오늘 늦게 또 비가 내린다고 했다. 아침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하니 나뭇잎이 막아준다. 853봉 코밑까지 이어지는 급경사 길을 무던하게 오른다. 유, 최, 임, 이.
이어지는 바위 능선은 양쪽으로 펼쳐지는 조망을 선사한다. 구병리 쪽으로 좌~악 펼쳐지는 숲은 말 그대로 푸른 비단결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은 여기저기에서 우뚝우뚝 멋을 내고 있다. 적암리 쪽으로는 자그마한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공사 중인 보은―상주 간 고속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좁은 들판 건너에는 다시 첩첩 산봉우리들이 아스라이 이어진다.
갓 시작된 장마를 비웃으랴. 왔다 갔다 하는 장맛비 틈바구니를 타서 시원한 산행이라! 땀은 비지처럼 나올까말까, 비에 씻긴 산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피부를 간질이니 마냥 좋다.
정상에서 통신위성기지국까지 내려오는 길은 겁나게 가파르다. 내려오다 돌아보면 폭 파여 길게 올라가는 골짝기가 그윽하다. 내리닫는 골짜기를 벗어나니, 나뭇잎 그늘도 걷힌다. 햇볕과 장마 구름이 번갈아 오고간다. 보은위성통신기지국 접시 안테나를 가까이에서 보니, 어마어마하다. 지름이 한 20 미터? 30 미터? 40 미터? ‥‥‥.
“야!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 크네.”
“저걸 엎어놓고 삼겹살을 구워?”
“광어회 몇 마리나 담을 수 있을까?”
“빈대떡을 구울까?”
“이리저리 뒹굴면서 먹어?”
“하, 하, 하, ‥‥‥.”
환영인가 축하인가, 다시 사기막 마을에 들어서니, 빗방울 서너 개가 떨어진다. 농산물 직매장으로 지어놓은 원두막에서 최랑이 내어놓는 토마토 한쪽을 입에 물고, 병풍 모습을 쳐다보고, 시루봉 예쁜 모습을 보고 또 본다. 원두막 뒤편 숲엔 복분자 어린 열매가 빽빽하게 맺혀 있다.
아! 모처럼, 장맛비 사이를 노려서 찾아온 구병산. 처음부터 끝까지 ‘병풍처럼’ 예쁘게 펼쳐져 있는 산. 보기에도 좋고, 걷기에도 좋고, 조망도 좋다.
아홉 폭 병풍이 넉넉하다.
넉넉한 품에 넉넉하게 노니노라.
눈에 와 닿는 산 빛과 허공이 넉넉하고
넉넉한 산천을 마주하는 가슴이 넉넉하다.
(200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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