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0:45ㆍ충청
산줄기는 겹겹이 엮이어 하늘 아래 아득하고
굽이치는 골짜기엔 냇물소리 기운차다.
2007년 10월 7일 맑음.
며칠 전 정암길을 걸으면서 보아 둔 길. 정암 마을에서 명암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궁금하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하늘은 맑다. 그래, 한번 가보자.
길바닥에 떨어진 알밤 몇 개를 내가 주워 먹는다고 해서 다람쥐들이 배를 곯는 건 아닐 것이다. 밤 껍질을 이빨로 벗겨 퉤퉤 뱉어내고, 고소한 속살을 오도독오도독 씹는다. 숲에서 나오는 서늘한 기운은 사람의 마음을 끝 모를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낭만인가? 숲 위에 쏟아지는 햇빛도 뭔가 알겠다는 듯 야릇한 기운을 보낸다. 나그네 가슴엔 무언가가 뭉클뭉클 차오른다.
고개를 넘기 전, 움직임이 없는 듯 가득 고여 있는 것은 호수였다. 가만 보니 호수는 산의 형상만 비춰내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가는 가지까지, 잎들이 가지고 있는 빛깔의 농도까지 자세하게 비추고 있다. 그러면서 잔무늬를 반짝인다.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뛰고, 이따금 새들이 날아다닌다.
뜻밖에도 일찍 나타나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보이지는 않는 계곡에서 물소리가 시원하다. 그늘진 숲 속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어느새 사라진다. 곧이어 나타나는 시냇물은 여기가 선계인 듯싶다. 저쪽 산굽이를 돌아 아까 그 호수로 흘러가는 냇물은 하얀 빛깔만큼이나 깨끗한 소리로 지칠 줄을 모른다.
냇물을 건너 다시 오르막.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니 또 하나의 냇물이 또 다시 소리를 먼저 보내 손을 맞는다. 아니, 한 줄기의 냇물이 첩첩한 산줄기 사이를 파고들며 굽이굽이 돌고 있는 것이다. 한없이 깨끗한 산 빛과 물빛과 소리와 공기에 싫도록 젖는다.
하얀 물소리가 겹겹 산중을 울리는 곳에
오르고 내리고 굽어지는 한 줄기 길.
산 빛에 젖고 물소리에 빠진 나그네가
한 줄기 바람인양 숲속으로 스며드네.
제천에서 내려오는 제천천이 덕동에서 내려오는 원서천과 만나는 합천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백운 쪽 길을 버리고 제천 쪽으로 간다. 공전을 거쳐 봉양까지.
애련 마을 입구에서 점심을 먹는다. 길에서 좀 떨어져 밭가에 있는 향나무 그늘 아래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삶은 감자 껍질을 벗기고, 달걀껍질을 벗긴다. 애련리를 지나고 박하사탕 촬영지를 지나서 공전역이 있는 곳까지는 철길을 따라 걷는다. 공전역 뒤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 공전1리에 있는 미니슈퍼에서 일어서기 아쉬운 휴식을 취한다. 공전3리에서 봉양까지 지름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하게 찾았다. 유랑께서 이렇게 길 찾는 걸 봤어야 하는 건데‥‥‥.
인생을 비교하지 말라고 했던가? 틈나는 대로 걷는 것과 틈나는 대로 술을 마시는 것과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 것도 비교하지 말자.
삼탄 시내버스 종점 ― 정암 마을 앞 임도 ― 명암 ― 합천 ― 애련 ― 공전 ― 봉양 / 5시간
(200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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