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0:51ㆍ충청
12월 16일 아침, 계룡산 동학사 입구.
길가에 늘어선 상가 앞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양은솥에 꼬치어묵이 잔뜩 꽂혀 있고, 주인 아낙들은 주차장에서 나오는 등산객들을 불러댄다.
“따끈따끈한 오댕 있어요.”
“추운데 동동주 한잔 딱 하시면 몸이 훈훈해 집니다.”
“이리 오세요.”
동동주는 길에서도 잘 보이도록 진열해놓았고, 차림표도 요란하다. 당연 군침이 도는 풍경인데,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속사정을 아는 이 누구일까?
동학사 입구 ― 남매탑 ― 삼불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 ― 주차장
칠층과 오층으로 된 남매탑 주변엔 하얀 눈이 얇게 깔려 있고, 삼불재에서부터 관음봉까지 칼날 능선엔 쇠로 된 사다리계단이 많다. 오른쪽은 공주시, 왼쪽으로 대전시, 양 옆 멀리까지 이어지는 조망이 좋다. 은선폭포가 있는 은선골, 가파른 돌길엔 눈이 얼어붙어 반들반들하다.
남매탑 옆에 안내판이 있다. 산속 수도승이 호랑이 목에 걸린 가시를 빼내주었고, 호랑이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혼례를 앞둔 처녀를 물어다 주었고, 처자의 부모는 수도승에게 처녀를 책임지라고 하였고. 결국 오누이의 연을 맺어 살다가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이야기.
설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얼까? 은혜에 보답하는 것? 윤리와 의리의 중요함? 세상 인연의 오묘함? 고결한 수도정신? 호랑이의 신령스러움? 그냥 재미로? ‥‥‥? 그러나 혼례를 앞두고 신부가 사라지는, 그것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날벼락을 맞은 양쪽 집안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어찌하나? 독신으로 수도에 정진해야 하는 처지에 처녀를 떠맡게 된 수도승의 난처한 입장은? 어쨌거나 호랑이는 은혜를 갚았고, 처녀의 부모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윤리에 비추어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 남의 입장은 알 바 아니고, 나의 도리는 다한 것이다.
오늘 산행은 사실 근제를 위해서 계획했던 것이다. 요즘 녀석을 보아하니, 마음을 씻을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으르고 달래서 한 주 전에 약속했던 것이다. 헌데, 녀석을 위한다기보다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20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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