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길 삼십 리[백운산]

2008. 2. 27. 10:57강원

새하얀 눈이 두텁게 깔려 있다.

저벅저벅 뽀드득 뽀드득.

시린 뒷덜미를 여미며 걷는다.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백운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순환 임도를 따라 간다.

걸어가는 열기에 한기가 가시고, 몸과 맘은 오로지 하얀 눈에 빠져든다.

백운정(白雲亭)에 앉아 쉬었다가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선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을 디뎌가는 발걸음에 또 다른 재미가 붙는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비로봉에서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치악산 능선이 가깝고,

소백산 비로봉은 멀리 구름 위에 떠 있다.


건너다보이고 내려다보이는 산의 품이 준수하다.

이리저리 뻗은 산줄기며, 줄기 사이사이 하늘을 안고 있는 골짜기들이

크지도 작지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리를 잡고 있구나.


검은 나뭇가지로 하얀 눈을 안고 있는 산 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발밑에 쌓여 있는 눈을 본다.

내리막에도 눈길은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더운 몸이 찬 공기와 어울린다.

통신대 쪽 줄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순환임도를 만나 출발지점에 와서 차를 탄다.


아! 하얀 눈 길 삼십 리.

요즘 세상에 이런 길이 어디 그리 쉬우랴.

두텁게 쌓인 하얀 눈을 실컷 밟는다.

뽀드득뽀드득, 푹푹, 저벅저벅, 미끌미끌.


아득히 먼 옛 사람들도 밟았을 하얀 눈,

어린 마음을 한 없이 설레게 하는 눈,

때론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기도 하는 눈이

지금은 나그네의 마음을 하얗게, 하얗게 바래고 있다.


2008.01.28.

유랑이랑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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