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1:30ㆍ동서남북
2007년 1월 4일.
겨울 속의 봄볕을 만끽하며 걷는다. 북쪽으로 가는 길. 압록강을 향하여 가는 길. 생각해 보니, 도보사랑 시무식인 셈이다.
장호원 터미널 앞(09:05)-이황리-여주군 가남 태평리-이천시 부발읍 응암리 파발막(13:00/중식) - 응암리(14:00)-대월면 가좌리-이천시내-신둔면 수광리(면사무소 앞/17:00)
수도권으로 빨려드는 길인지라 꽤나 번잡스럽다. 동쪽이나 서쪽이나 남쪽[충주―울진,충주―만리포, 미조항―충주]과는 달리 마을과 도회가 끊이지 않고, 요란한 자동차 행렬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한적한 샛길도 거의 없다. 그저 3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생고기, 생등심, 갈비탕, 유황오리, 오리주물럭, 한방오리, 오리정식 풀코스, 집두부, 추어탕, 토종닭, ○○가든, □□가든, ‥‥‥. 가끔가다 막국수도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역시 이 지방 특산물인 이천쌀밥이다. 무슨 무슨 도요라고 쓴 간판들이 요란한, 도자기 전시장 겸 판매장들도 한동안 이어진다. 장호원읍을 벗어날 때까지는 장호원 복숭아를 알리는 선전물이 많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라서 그런지 조경용 소나무와 향나무 단지들이 자주 눈길을 끈다.
이천 시내가 얼마 남지 않은 곳, 저 앞에 서성이는 사람이 낯이 익다. 아니나 다를까. 응암리 파발막에 있는 농부밥상집 주인장이시다.
“아까 점심 값을 잘못 받아서요.”
점심 밥값 4,000 원을 거슬러 주러 왔단다. 가슴에 잔잔한 흐름이 지나간다. 이런 걸 감동이라고 하는 건가?
해마다 입춘 한참 전부터 마음속으로 봄을 그리며 가슴 설레곤 하는데, 지금은 한 겨울. 모든 잎이 떨어지고, 말라붙은 산천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 역시 완전히 메말라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 안타까움에 묻혀 지내다가, 오늘, 한겨울에 봄볕을 쬐며 걷는다. 땅속 깊숙이에서 봄을 기다리는 씨앗을 억지로 그려본다. 깊숙이 말라붙어 있는 마음속의 봄을 억지로, 억지로 그려본다. 이 길 위 나타날 “눈 녹은 삼팔선”도 그려본다. 더 이상의 억지로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 안타까움도 삶의 일부이려니.
(200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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