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붐비는[신둔-서울-의정부]

2008. 2. 27. 11:33동서남북

2007년 2월 20일(화).

음력으로 정월 초사흗날 아침 아홉 시 이십사 분. 수광리(이천시 신둔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걸음을 뗀다. 유랑, 최랑, 이랑. 수도 서울로 향하는 길에 국토의 동맥을 울리는 우렁찬 자동차 행렬이 시끄럽다. 길 가엔 요란한 간판을 단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사람들은 저마다 생업에 분주하다. 활기찬 세상살이 모습이다. 경기도 여주와 이천과 광주는 도자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고장, 올 4월에 있을 도자기 비엔날레를 알리는 현수막과 선전물들이 자주 나타난다.


광주시 실촌읍 곤지암은 소머리국밥으로 유명한 곳, 여기저기 소머리국밥집이다. 그냥 갈 수 없다. 열한 시 사십 분이면 때도 얼추 됐다. 탤런트 배연정 씨 이름이 붙은 식당으로 간다. 나무가 자라면 새들이 깃을 틀고, 그늘엔 사람이 쉬어 간다. 사람이 이름을 얻으면 그늘이 만들어져 또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던가?


광주시내에서 이배재를 넘어 성남시로 들어간다. 남한산성 남쪽이라 성남이라고 한 것인가? 산자락이 길게 이어지는 계곡 길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잘 포장된 도로를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내달리고, 양 옆 지능선엔 나무 대신 온갖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커다란 남한산 골짜기들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수없이 오가는 저 사람들 중 이 골짜기의 본래 모습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란시장 옆을 지나치면서 순대에 막걸리 한 잔을 생각한다. 단 몇 십 미터도 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건 싫다. 길 가에 있는 집을 찾자. 없으면 할 수 없고, ‥‥‥.

하는데, 신호등 건너 바로 눈앞에 순대집이 나타난다.

“어디 앉을까요?”

“거기요.”

가게 처마 밑, 국물이 끓고 있는 커다란 양은솥 가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으란다. 좁은 가게 안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걸 힐끔 보면서, 지친 몸을 주저앉힌다. 꼭, 포장마차에 앉는 기분이다. 대도시 한 복판, 붐비는 큰길가에서, 아주 잠깐, 몸과 마음을 쉰다. 바로 코앞에서 썰어 주는 순대 맛이 괜찮다.

“‥‥‥.”

“‥‥‥?”

“걸어갑니다. ‥‥‥ 오늘은 송파까지 갑니다.”

“‥‥‥?

주인아주머니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투다.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저 아랫녘에서 만난 사람들은 쉽게 믿어주는데, 여긴 서울이 가까운 수도권이라 잘 안 믿는군요.”

우스갯소리지만 억지는 아니다. 충주를 중심으로 동서 양쪽 바다를 걸어갈 때나, 남해에서 걸어 올라올 때 만났던 사람들은 쉽게 믿었었다. 요새 세상에 자동차를 놔두고 걸어서 다닌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는 일이기는 하나, 한두 마디 건네다 보면 믿어줬었다.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야속하다는 건 아니다.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아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그냥 순대를 먹는다. 막걸리 맛이 좋다.


드디어 서울!

경기도 성남시 끝에 서울특별시 송파구가 이어진다. 16:45. 접경 지역 도로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까 먹은 막걸리 덕분에 다리 밑 하천가에 흔적도 남긴다. 남해바다에서 시작하여, 경남-경북-충북-경기를 거쳐, 수도―서울에 들어서는 순간! 감격이다. 초사흘 눈썹달이, 한참 아래에다 샛별을 데리고, 저쪽 하늘에 떠 있다. 다른 별은 단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지상에선 서울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나그네 가는 길을 밝혀주고 있다.


우리 도보사랑이 길을 가면서 늘 희희낙락하는 것 중 하나가, 이따가 뭘 먹을까? 하고 농 삼아 던지는 말이다. 그럼,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19:30 가락동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회를 시킨다. 싱싱하고 값도 싸다. 바닷가에 와서 먹는 기분이다. 소주도 한잔 하니, 기분이 마구 뜬다.


이튿날, 2월 21일 수요일.

새벽잠을 뒤척이다 채비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나니 여덟 시가 좀 지났다. 삼전도비를 보았다.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는 비극을 전하고 있는 비석. 최근에 어떤 사람이 붉은색 스프레이로 비문을 훼손하였단다. 그래 일반인의 근접을 막아 놓고 있다. 그 치욕적인 비문을 쓴 이경석이란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이 그리되게 한 장본인들은 오히려 절대로 그런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단다. 그들은 당시 실세였다. 그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상대 당에 속하는 이경석에게 쓰게 해 놓고서는 그런 글을 썼다고 가혹하게 핍박했다는 얘기다. 선(善)을 떠벌리며 세력을 얻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잔인하게 선(善)을 짓밟는 이들이 있다. 과거 기록에만 있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에도 그렇다. 미래에도 그럴 것인가? 그게 세상인가? 계속 이어지는 송파대로, 롯데월드―석촌호수를 지나 잠실대교를 건넌다.


잠실대교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이다. 건너자마자 광진구라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진(津)은 나루라는 뜻, 곧 ‘광나루’. 송파나루 건너 광나루였을 게다. 어떤 사람이 쓴 소설에 송파 쇠살주가 나온다. 조선 후기 보부상들 얘기가 나오고, 시장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민들 애환이 그려져 있고, 썩을 대로 썩어빠진 벼슬아치들이 판을 치는 얘기도 나오는 소설이다. 인간의 도리와 의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었다.


서울은 참으로 거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하긴 세계에서 손꼽는 도시 ― 국제도시시이다. 가도 가도, 걷고 걸어도 이어지는 큰길과 자동차 행렬, 크고 작은 건물들, 사람들의 물결. 그 속을 걷는 나그네.


광진구에서 중랑구로 들어서면서 중랑천 가를 잠깐 걸었다. 역시 서울이라는 생각을 한다. 둔치에 조성한 산책로와 레포츠 시설들이 아주 훌륭하다. 서울 사람들의 경제력인가? 중랑천 자체도 꽤 훌륭한 하천이고, 외곽지역이라서 그런지 공기도 좋아 보인다. 다시 3번 국도로 길을 잡아 의정부까지 걷는다. 안개인지 하늘이 부옇다. 도봉산-사패산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언뜻언뜻 나타난다.


송파구-광진구-중랑구-노원구. 이렇게 걷고 나니 서울을 좀 알 것 같다. 자동차를 몰고서 원하는 곳을 대충 찾아다닐 수 있겠다는 정도의 감이 잡힌다. 경기도 의정부에 와서 멈춘다. 광주시―성남시―서울시―의정부시.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수도권, 똑같은 서울이다. 자동차 많고, 사람 많고, 언제나 어디에나 붐비고, 시끌벅적한 서울. 이틀 동안 그 물결 속을 물 흐르듯 걸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의정부 장암역에서 멈춘다. 15:30

언제나 걷는 나그네!


2월 20일 화요일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09:45) ― 곤지암(광주시 실촌읍) ― 쌍령동 ― 목현동 ― 이배재 ― 성남시 상대원동 ― 수진동 ― 모란시장 ― 복정동 ―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 가락동(19:30)


2월 21일 수요일

석촌동(08:00) ― 잠실대교 ― 광진구 모전동 ― 군자동 ― 중랑구 중화동 ― 묵동 ― 노원구 하계동 ― 상계동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15:30)

(2007.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