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8. 21:38ㆍ경기
백제, 또는 신라 때 쌓았다는 이야기보다는 조선조 인조 임금이 병자호란 때 피난했던 곳으로 더 유명한 산성.
농성하던 임금이 성 밖으로 나와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하는 치욕을 겪은 지 400년 가까이 지났다.
‘미국 쇠고기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때, 답답한 가슴을 안고 산성을 둘러본다.
지금 남아 있는 성은 인조 임금 때[1624] 고쳐 쌓은 후, 몇 차례에 걸쳐 보수하고 시설물을 보충하였단다.
남문을 지나 남장대 터 다음부터는 허물어진 성이 그대로 있고, 다시 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쉬엄쉬엄 성을 한 바퀴 돌면서 둘러보는 산은 푸른빛과 생긴 모양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떤 터를 잡는 옛날 사람들의 안목에 새삼스런 감탄이 터진다.
수어장대에서 가까운 암문(暗門)을 잠깐 나가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또 한번 감탄한다.
옛날에 성을 쌓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산성을 쌓는 일은 왕이나 조정이나 일반 백성이나 모두의 일이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피땀 흘려가며 성을 쌓았고, 나라를 위한다는 큰 뜻 앞에 모든 고충을 기꺼이 참아냈을 것이다.
백성들은, 임금과 조정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조선조 인조 때 청나라 군사가 쳐들어왔다.
임금과 조정은 이 성 안에서 전쟁을 논의했다.
주전론과 주화론이 치열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에 집착하는 사람들, 국제정세와 실리를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의 안위를 걱정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고, 어떤 명분으로 갑론을박했었을까?
끝내 굴복하면서, 치욕을 삼키면서까지 상대 당을 공격하여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지금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시대.
옛 사람들이 쌓은 산성, 인조 임금이 농성하던 산성에서 촛불을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을 쌓듯 촛불을 모으고 있다.
돌에 치어가며 성을 쌓았듯이 방패에 찍히고, 물대포에 넘어지면서도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정권이 포기한 주권을 지키겠다고 한다.
정권은 그들을 나무라고, 말리고, 윽박지른다.
촛불행진을 막기 위해 경찰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장벽을 사람들은 ‘명박산성’이라고 했다.
그 앞에 모래를 날라다 ‘국민토성’도 쌓았다.
옛날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쌓은 성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그들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명박산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박산성’과 촛불, 어느 것이 나라를 지키는 ‘성’인가?
‥‥‥.
정권을 잡으면, 정권에 동참하면 일반 국민과 달라져야 하는 것인가?
정권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같이 갈 수는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위정자들이 정권을 방편으로 사익을 추구한다고 여긴다.
국민의 안녕과 평화와 공익을 위해 일하라고 맡긴 권력을 사익을 위해 휘두른다고 말한다.
공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희롱하고 짓밟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돌을 날라 성을 쌓듯, 주권을 지키고자, 공익을 지키고자 촛불을 모아 흔든다.
성을 한 바퀴 돌고 성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북적인다.
좋은 경치, 유서 깊은 지역을 찾아 온 사람들과 그들을 맞는 음식점이며 상점들.
상가 틈새 길로 통하는 남한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인조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머물렀던 행궁 터는 마을 자리 위에 있다.
상궐과 좌전, 우실이 복원돼 있고, 하궐 쪽은 아직 기초공사도 안 돼 있다.
내려다보이는 마을 쪽과 주변 산세가 터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서넛이 무리가 되어 올라온 사람들이 주고받는다, “기가 막힌 명당이네.”
아무래도 한잔 해야겠다.
‘장터국밥’을 써 붙여 논 식당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키고, 막걸리를 주문한다.
때 맞춰 빗방울이 듣더니, 이내 주룩주룩 내린다.
눈비도 오고, 가뭄도 들고, 덥기도 춥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
울고 웃고, 떠들고, 침묵하고, ‥‥‥.
그게 세상인가?
빗방울이 가슴 깊이까지 떨어져 스민다.
(200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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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 신라 문무왕 12년(672) 축성. 조선조 광해군 13년(1612)에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 정하였고, 인조2년(1624)에 시작 2년 만에 준공. 외성과 성 안 시설물 공사가 순조 말까지 계속됨. 둘레 11.76Km. 높이 3-7.5m. 4장대, 5옹성, 16암문, 2돈대. 성 안에 군포 125, 못 45, 우물 80, 물레방아 9. 행궁, 종묘, 사직, 관아, 객사, 종각, 사찰 9 등. 현재 경기도 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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