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0. 10:28ㆍ경기
2008년 8월 18일 월요일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린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권영국 문병을 마치고 나오니 부슬비로 바뀌어 부슬거린다. 유 선생님과 김 선생님은 이 선생님과 함께 충주로 가시고, 혼자서 불암산으로 간다. 전철 상계역에서 내려 순대국밥 요기를 하고 나니 오후 두 시. 비는 아까부터 개는 듯 오락가락,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걷는다. 날씨 덕분에 늘 붐빈다는 산길이 아주 호젓하다. 불암산을 넘고, 수락산을 넘었다. 석림사 계곡에 흐르는 물이 깨끗하고 기운찬 걸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다. 오가는 이가 없으니 맘 놓고 훌훌 벗는다.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속에 풍덩풍덩 몸을 담그니 날아갈 것 같은 이 기분, 그 누가 알랴. 이것도 날씨 덕인가? 행운이다. 의정부시 장암동에 오니 여섯시 좀 넘은 시각. 여기서 하룻밤을 묵느냐? 랜턴이 있으니 사패산과 도봉산을 넘어 우이동까지 가느냐? 몇 차례 갈팡질팡하다가 쉬었다 가기로 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의정부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저녁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니 금상첨화.
8월19일 화요일
새벽에 나와 한참 만에 찾은 음식점[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로 요기를 하고 사패산에 오른다. 정혜옹주가 시집갈 때, 아버지 선조 임금이 패물로 주었다고 해서 사패산(賜牌山)이란다. 그런 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약하게 내리는 빗속을 우산을 쓰고 걷는다. 가파른 길을 너무 급하게 올라온 것인가. 사패능선에서부터 왼쪽 무릎이 이상하다. 비안개가 자욱하여 멀리가 안보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걷는 건 괴로움인가? 보는 건 즐거움이고? 보는 즐거움이 있어 걷는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건가? 힘들어서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다시 산을 찾는 것도 보는 즐거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가? 비와 안개를 쓸어가려는지 바람이 거세게 분다. 한라산 백록담 가득 안개가 넘쳐흐를 때 불던 바람소리 같다. 안개 사이인지 바람 사이인지 햇빛이 언뜻언뜻한다. 이내 하얀 바위 봉우리가 여기저기 나타나더니, 하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이 내려다보인다. 길은 바위 위를 오르내리고, 바위 봉우리는 소나무 숲을 젖히고 사방에서 솟아오른다.
도봉산 자운봉을 지나 우이능선을 내려오니 햇빛이 쨍쨍하다.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로 잠깐 쉬었다가 북한산 백운대로 향한다. 뜨거운 햇볕은 우거진 나뭇잎이 가려주지만 덥다. 하루재를 지나 인수대피소, 인수봉 암벽 타는 사람들을 보며 가다 보니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황당한 일이 ‥‥‥. 덕분에 인수봉 쪽 가파른 바윗길과 한참을 씨름한 후, 백운대피소에서 제 길을 만났다. 아문 앞에서 백운대를 바라본다. 아찔하다. 쇠밧줄과 계단이 없다면 감히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백운대. 사방으로 서울 시내가 죄다 내려다보인다. 어제 오늘 걸어온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여러 봉우리와 능선을 한참 동안 훑어본다. 천 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그리고 서울 바깥 수도권 여러 도시들과 들판을 빙 둘러본다. 그 가운데에 한강이 흐르고 있다. 건물 숲 군데군데 작은 봉우리들이 짙푸르다. 북한산과 도봉산 여러 봉우리들 사이사이에 펼쳐지는 풍경은 도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세상에! 대도시 한 가운데 이런 멋진 산이 ‥‥‥. 아니, 이런 명당이기에 한나라의 수도가 자리 잡은 거겠지. 이처럼 좋은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도권’을 이루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 촌놈이 처음으로 수도권에 있는 산에 다녀온 이야기. 불수사도북.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주능선을 이어 걷고자 했었다. 첫날[어제] 오후에 시작을 한데다 중간에 몇 번 길을 헤맸기에 시간이 좀 부족했고, 왼쪽 무릎이 좀 아팠기에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산 백운대에서 동장대, 대동문, 대남문, 문수봉을 거쳐 불광동 대호통제소로 내려가려던 것을 대동문에서 수유동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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