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3. 22:28ㆍ충청
오랜만에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군자산을 찾았다. 이십 년쯤 전에, 십 년쯤 전에 왔었던 산. 두 번 다 학동마을 쪽에서 올랐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도를 닦으며 기거했었다는 원효굴 옆으로 길이 나 있었다. 단단하게 지은 비닐 움막이 있었고, 사람이 기거하는 기척이 있었다. 분명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국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었고, 그렇게 행동했었고, 그래서 눈총을 마구 사던 마음을 달래며 걸었었다. 한 번은 되짚어 학동으로, 한 번은 쌍곡으로 내려 왔었다.
오늘은 쌍곡계곡 소금강에서 올랐다. 박환홍, 김선창, 모침이 마을 이장님, 이호태. 산마루에서 쉬었다가 도마리로 내려왔다. 오르막이 매우 가파르고, 바람소리는 서늘하다. 언뜻언뜻 나타나는 바위 벼랑들은 날아가는 듯한데, 거기에 소나무들이 서서 푸른 연기를 엷게 피우며 바람을 맞고 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나뭇잎이 군데군데 보이고, 꼭대기로 가면서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들도 있지만 단풍놀이는 아직 이르다. 숲속에 묻혀서, 바위를 타면서, 첩첩이 멀어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아! 내려오는 길에, 단풍나무 군락지에 붉은 단풍 한 무더기.
군자산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지만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라고 하고, 재주보다 덕이 나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저쪽 사오랑 마을에서 아주 단정한 이 산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고, 오늘은 산으로 들어서면서, 소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그런데 산길은 팍팍하다. 한 번 와 보고선 다른 이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들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군자산인데. 곰곰이 생각하며 걷는데 여기저기에서 바위와 소나무들이 ‘한 멋’하며 나타난다. 은은하게 드러나는 멋. 산마루에 올라서니 사방 멀리에 산등성이들이 겹겹이 구불거린다. 속리산 천황봉-비로봉-문장대, 그리고 청화산-조항산-대야산으로 이어지다가 구왕봉-희양산 쪽으로, 멋들어진 월악산 영봉 뒤로 해서 소백산 쪽에서 다시 나타나 이어지는 줄기가 백두대간이다. 가까이에 있는 박달산, 옥녀봉, 칠보산 등등은 이 산과 더불어 모두가 괴산의 명산이라 불린다. 고고한 기품을 가진 학이 깃들었었다는 학동마을이 산발치에 있고, 양옆 산자락에 갈은구곡과 쌍곡구곡이 있다. 산은 연하구곡이 잠겨 있는 괴산댐에 발을 담그고, 건너편 물가 벼랑에는 '산맥이 옛길'이 걸려 있다. 두드러지게 요란하진 않지만, 은근한 매력이다. 그런대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가?
괴산에서 자연산 버섯찌개로 뒤풀이. 지금까지 먹어본 버섯찌개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맛. 소주 두어 잔은 물론이다. 캬~!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덤으로 괴산장 구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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