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눈 속에[월악산]

2012. 12. 8. 23:34충청

어제 그제 이틀 동안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 올겨울 들어 첫눈인 셈인데 10Cm 정도씩 연 이틀, 두 차례. 하얀 축제에 빠져들면서도 걱정이 되었던 것은 눈이 내리고 나서 이어지는 강추위로 도로가 얼어붙는 것. 오늘 리코와 월악산을 오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잡아놓은 날 코밑에 도로가 얼어붙는 것이다.

 

정말 엄청나게 내렸다. 춥기도 추운 날씨다. 제설작업을 하였다고는 하나 산골로 들어서면서 도로는 다져진 눈길이다. 오르막길에서 오도가도 못 하고 있는 승용차를 몇 대 보면서 버스를 타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거푸 한다. 그러나 길을 나서기 전에 하는 걱정은 그저 그런 걱정일 뿐. 시내버스에 앉아 온통 하얀 세상을 뚫고 달리는 마음은 즐거움과 설렘과 어떤 기대감으로 든든해진다. 영하 10도 이하라는 싸한 냉기도 이렇게 나서보니 오히려 상쾌하게 다가온다.

 

덕주사 입구에서 내렸다. 명색이 국립공원이라는 산세에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경치는 말 그대로 선경인 듯 마음을 통째로 빼앗아 간다. 한국에 온 지 서너 달쯤 되는 리코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스마트폰 사진기를 눌러대느라고 정신이 없다. 산속에 있는 덕주사와 산성과 마애불도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그러나 높이 올라감에 따라 눈구덩이에 빠지고 미끄러지고 하는 사이에 손이 시리고 발이 시리다고 끙끙댄다. 그러면서도 괜찮으냐고 물으면 씩씩하게 오케이, 오케이 한다. 960고지를 넘어 헬기장, 코앞에 솟아 있는 영봉을 가리키면서 갈 수 있겠냐고 또 물으니 해보겠단다. 그래 스물다섯 팔팔한 젊음을 믿자. 손끝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고생도 지나고 나면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구덩이를 헉헉거리면서도 씩씩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다행히 바람은 조용하다.

 

와~! 드디어 영봉. 눈 쌓인 월악산이 처음이 아니건만, 사방에 펼쳐지는 하얀 세상이 꼭 처음인 것처럼 마음을 사로잡는다. 리코는 또 스마트폰 사진기를 연방 눌러댄다. 마침 부산에서 왔다는 청년이 올라온다. 리코와 함께 폼을 잡고 한 컷 부탁. 대단한 청년이다. 부산에서 새벽에 올라왔고, 다시 되짚어 내려간단다.

 

월악산 아래 송계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린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대로 가지 말아야 하는 건가? 버스를 타면 되지.  그래도 승용차를? 엊저녁에 하던 걱정은 아예 멀리 달아나 버렸다. 채비가 부실한 리코를 보면서, 마애불까지는 괜찮겠지 하던 마음도, 손발이 시리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리코를 염려하던 마음도 싹 가시었다. 리코가 의외로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눠 보지만 영어가 워낙 서툴다 보니 화제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먹는 얘기, 좋아하는 음식 얘기가 많이 나온다. 술 얘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예 이과두주 한 병을 시켜 ‘짠’ 하고 톡 털어 넘긴다. 역시 이 맛. 이렇게 마무리 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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