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바닷가로[사천둑방길/4구간]

2013. 5. 19. 13:58바우길

2013년 5월 17일.

명주군왕릉에서 사천항까지 걸었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동해 푸른 바다까지.

 

명주군왕릉은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의 묘소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속에 있다. 김주원이 명주군왕이었기에 왕릉이라고 부른다. 김주원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 또는 셋째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한다. 선덕여왕이 죽은 후에 왕으로 추대되어 경주로 가는 중에 홍수로 강을 건너지 못하여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신하들은 이를 하늘의 뜻이라 하여 그 대신 김경신[원성왕]을 추대하였다. 김주원은 명주[강릉]로 와서 일가를 이루고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 김주원과 김경신은 왕위를 놓고 다투던 라이벌. 어느 날 김경신이 흰 갓을 쓰고 천관사 우물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아찬 여삼에게 말하였더니, 왕이 될 꿈이라고 하면서 알천에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고 났을 때 큰비가 내려 김주원은 알천을 건너오지 못하였고, 신하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을 추대하니 신라 38대 원성왕이다.

 

명주군왕릉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니 멀리 부옇게, 수평선인 듯 구름인 듯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이어서 평지처럼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산속을 구불거린다. 임도인 듯 좁지 않은 길이 호젓하다. 두릅나무 순이 꽤 보인다. 사람들이 두어 차례 꺾어 가고 난 다음에 피어난, 아직 쇠지 않은 것들이 있다. 저녁 밥상에 곁들이겠다며 꺾어 봉지에 담는 최랑을 거들기도 하고 놀려대기도 하면서 낄낄거린다. 간만에 한데 어울려 떠들고 웃고 하면서 산길을 걷는다. 세속을 떠나와서 세속을 푸념하고 원망도 하고 비웃기도 하고, 그러면서 웃어댄다. 웃음소리가 파랗게 퍼진다. 가슴속 티끌들이 털려 나간다.

 

숲을 벗어나면서 나타나는 해살이마을. 소나무 숲 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미나리 빈대떡, 쑥개떡, 주먹밥, 오이무침과 씀바귀무침, 그리고 막걸리까지. 새벽길을 나서면서 챙겨온, 호이장님과 임랑과 최랑의 성의에 그저 고마울 뿐. 흐뭇하고 즐겁다.

 

산속을 벗어난 시내는 폭이 넓어지고 논밭을 거느린다. 이제 어엿한 냇물이다. 모래가 많다고 하여 모래내-사천천이다. 마을이 이어지고, 더욱 넓어지는 내에 가끔씩 보가 막히고, 물은 보를 넘어 흐르고, 길은 둑방을 따라 간다. 감자밭이 많이 보인다. 강원도 감자. 저게 하지 감자다. 한 달쯤 지나면 알이 굵은 감자를 캐낼 것이다. 분이 팍팍 나는 찐 감자를 떠올리며 침을 삼킨다.

 

둑방길에서 벗어나 찻길과 만나는 곳에서 잠시 방향을 잡느라고 머뭇거린다. ‘○○한과’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노동리, 모래내한과마을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계속 둑방길로 가자, 지도를 보면 저쪽이 맞다. 아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 지도에는 저쪽이 맞는데, 마을 사람들은 둑방길을 권한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기웃거리는데 솟대표지가 보인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길이다. 慶州金氏歲藏山이라는 큼직한 푯돌도 보이고, 가족납골묘도 보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마을 사람들은, 사천항에 이르는 빠른 길로 둑방길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숲속에서 나와 둑방길을 걷다가 마을을 벗어나 야트막한 숲속 길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김동명 묘소는 발견하지 못했고, 7번국도 밑을 빠지는 지하도 벽에서 그림을 곁들인 그의 시를 본다. 파초, 수선화.

 

길은 다시 둑방길. 일직선으로 벋은 길 저 끝에 바다가 보인다. 밭에서는 계속 감자가 자라고 물가에는 이따금 낚시꾼들이 앉아 있고, 서서 있다. 드디어 사천항. 바닷바람이 확 불어온다. 옷깃을 여미면서 작은 어항을 두리번거린다. 주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40분 정도 걸어 나가야 한단다. 방금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사천면소재지 입구 7번국도까지.

 

 

 

 

 

 

 

 

 

 

 

 

* 바우길 4구간 사천둑방길 / 명주군왕릉~사천해변공원 18Km

* 5월 17일 07:00충주버터미널-08:10원주버스터미널08:55-10:25횡계/택시로 명주군왕릉-도보-사천항

* 주문진항에서 생선회 그리고 1박 /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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