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네 습지[문경 굴봉산]
2020. 10. 4. 20:41ㆍ경상
조용하게 분주하게. 아홉 달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차분하게 맞이한 추석 명절은 연달아 울리는 방역 메시지와 함께한다. 방문과 모임을 자제한다고는 하나 도로에는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 연휴 4일 동안 조용히 분주했고, 마지막 날에 문경 돌리네 습지를 걷는다. 2020년 10월 5일이다.
돌리네는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웅덩이 모양의 지형'을 말하는데, 빗물이 빠져나가는 싱크홀이 있어 배수가 잘 되기 때문에 논농사는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돌리네에 습지가 있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굴봉산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돌리네 습지가 있다.
우곡리 읍실에서 가파른 길을 잠깐만에 올라선 고갯마루에서부터 돌리네 둘레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다가 안쪽으로 내려선다. 사과 과수원이 있고, 오미자밭이 있고, 들깨밭이 있고, 더 내려가니 습지가 나타난다. 세상에, 산속에 이런 늪이 있다니. 더구나 물이 잘 빠져나간다는 돌리네에 있는 습지라니. 한길이 훌쩍 넘는 물억새, 사초가 숲을 이루고, 마름이 가득 떠 있는 둠벙이 있고, 버드나무 숲이 있고, 여기저기에 물이 고여 산과 숲을 담아낸다. 저기 손바닥만한 뙈기논엔 노랗게 익어가는 벼가 한가득하다.
산속에 있는 습지에 신비스런 분위가 감돈다. 햇빛 머금은 물억새 하얀 꽃밭이 살랑이고, 버드나무 숲엔 시나브로 가을빛이 내려앉는다. 흙바닥엔 산짐승들 발자국이 어지럽고, 넋 잃은 나그네는 갈 길을 잃는다.
다시 고갯마루. 안녕하세요? 산불 감시초소처럼 보이는 안내소에 칠십은 돼 보이는 노인 두분이 있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게 한 3년 됐지. 그전에는 습지라는 개념 없이 농사나 짓고 했지 뭐. 환경부에서 보호지역 안에 있는 사유지를 모두 매입할 것이고, 현재 30% 정도 사들였다더군. 요 아래? 읍실. 우곡1리지. 저 아래 마을이 우곡2리고. 읍실 저쪽으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 그쪽 고갯마루에 홍보관과 안내소, 편의시설이 들어설 거고. 올 연말에 완공 예정이라고 하데. 보호지역으로 관리하면서, 관광지로 개발하여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얘기다. 반가운 소리는 아니다. 오염과 훼손에 대한 걱정인가? 나는 이렇게 속속들이 다녀오면서? 무슨 심보일까.
한 십 리 남짓한 곳, 같은 산북면 대하리에 장수황씨 종택이 있고, 대문 안쪽에 수령 400년이 넘는 탱자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558호. 나이가 많은 만큼 커다랗고, 아직 푸른 잎새 사이사이에 노란 열매가 열렸고, 사방으로 가지가 늘어진 모습이 의젓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대하리 소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426호. 나이는 두 나무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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