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마을 가는 길[군위]

2021. 1. 30. 22:09경상



헤매021년 1월 30일 토요일. 경상북도 군위군 인각사 주차장. 트럭에서 내리는 중년에게 길을 묻는다. 화산산성이요? 여기서 가는 길은 없어요. 저쪽으로 돌아서 가야 합니다. 아니요, 걸어서 가는 길이요. 그럼 저기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골짜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쪽 동네에서 다시 물어 보세요. 고맙습니다.

화수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골짜기로 접어든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마을길이 두엇으로 갈라진다.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두리번 방향을 더듬어 본다. 그래, 확실하게, 물어보자. 말소리를 따라 어느 집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할아버지께 여쭙는다. 거기 돼지가 많아 위험한데. 이리 와봐. 저 건너 언덕에 절이 보이지? 거기서 오른쪽 산등성이를 타고 가면 돼. 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물어봐. 돼지가 많은데. 길은 분명한가요? 그럼. 있지.

지장사 절집 앞. 산등성이로 들어서는 길이 애매하다. 다시 물어보자. 아, 저기. 마당에 나와 무언가 손을 보는 아저씨. 잘못 왔어. 여기서는 길이 없어. 나는 몰라. 아, 그래요? 몇 집 안 되는 마을 길을 기웃거린다.

아니야, 아까 할아버지 말씀도 있었고, 아무리 봐도 여기가 맞아. 몇 집을 기웃거려도 멍멍이 소리만 요란할 뿐, 모두 인기척이 없다. 가만. 그래, 저기. 잠깐 헤매다가 어떤 산소 뒤쪽을 눈여겨 살펴본다. 마른 숲을 헤치자마자 뚜렷한 산길이 나타난다. 그럼 그렇지. 아, 이 호젓한 숲길. 좋다.

화산마을에선 길을 물을 것도 없이 이정표가 아주 잘 돼 있다. 산꼭대기 마을 풍경과 고랭지 농산물로 이름이 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거의 모두가 '저쪽' 길로 자동차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 오늘 나처럼 이렇게 올라오는 사람이 또 있을까.

'화산벌'이란 이름처럼 산꼭대기에 시원하게 펼쳐진 언덕벌이 한 풍경을 이룬다. 여기저기에 한둘씩 흩어져 있는 집들과 마을들, 느릿느릿한 등성이를 타고 펼쳐지는 농경지들이 어우러지는, 정말로 볼만한 풍경. 이 높은 산꼭대기에 이런 마을이 있다니. 이야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가 아닌가. 산성이 있고, 전망대가 둘이고, 마을회관이 두엇이고, 체험 시설이 들어섰고, 마을길은 둘레길이 되었다. 민박집이 보이고, 카페가 보인다. 하늘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건너편 산 위에서 느릿느릿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들도 그림이고, 풍차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군위호를 품은 풍경 또한 그림이다.

하늘전망대 돌에 새겨진 한시는 아득한 산꼭대기 마을의 풍경을 신선이 사는 세계에 비유하였다. 시를 지은 사람이 임진왜란 때 재상을 지낸 유성룡이라고 하니, 마을의 역사가 그 이전부터라는 걸 알겠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선경임을 알겠다.

누가 이 고운 산에 밭을 일구려는가
여기에 사는 신선과 인연이 있다는 건가
누가 나어게 구름사다리를 빌려주오
맑은 샘에 가을바람 불 제 푸른 연을 캐리다.

誰向華山欲問田
仙源從此有因緣
諸君借我雲梯路
玉井秋風採碧蓮

삼국유사면: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2021년 1월 1일부터 고로면이, 삼국유사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때 일연 스님이 이곳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고 한다. 인각사 절터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일연테마로드와 일연공원이 생기더니 면의 이름도 바뀐 것이다. 지방 자치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읍이나 면 등 행정구역 이름을 바꾸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안 좋은 어감이나 인상을 버리고, 일제 잔재를 버리고,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관광 자원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영월군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서면을 한반도면, 충주시 금가면을 중앙탑면, 상모면을 수안보면, 이류면을 대소원면, 고령군 고령읍을 대가야읍, 포항시 대보면을 호미곶면, 울진군 서면을 금강송면, 영동군 황금면을 추풍령면, 평창군 도암면을 대관령면으로 등등.

화산산성: 조선 숙종35년(1709), 병마절도사 윤숙이 병영을 건설하기 위해 쌓기 시작하였고, 거듭되는 흉년과 질병으로 백성들의 부역을 계속하여 시키기가 어려워 중지하였단다. 북문과 그 옆 수구문은 공사를 하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는 것이 안내판의 설명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인각사 주차장-화수삼거리-지장사-화산마을-하늘전망대-억새바람길-화산산성-풍차전망대-인각사. 16.9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