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그리고 석굴암[군위 한밤마을]

2021. 3. 18. 21:49경상








밤이 길어서 한밤. '한밤'의 '한'은 '크다, 많다'는 뜻을 가진 옛말. 이걸 한자로 표기한 것이 一 , 大. 밤을 훈차한 것이 夜, 栗. 따라서 一夜(일야), 大夜(대야), 大栗(대율)은 '한밤'을 이두 식으로 적은 것. 서기 950년쯤부터는 大栗로 적었단다.

2021년 3월 18일 목요일. 한밤마을 골목길을 걷는다. 거의 모든 집들이 돌담을 두르고 있다. 텃밭들도 모두 돌담에 갇혔다. 이리 가도 돌담, 저리 가도 돌담이다. 넓은 곳이라야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 양옆으로 돌담이 이어진다. 오래된 기와집도 새로 지은 시멘트 집도 돌담을 둘렀다. 집을 새로 지을 때 돌담이 다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했을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세상에나, 작지 않은 마을 집집마다 텃밭마다 모두 이렇게 돌담이라니.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면서 캐낸 돌들로 쌓았고, 대홍수 때 팔공산에서 떠내려온 돌들을 주워다 쌓았단다.

이끼 낀 돌담 위로 노란 산수유, 하얀 매화가 여기저기서 조용하다. 마을에 일이 있을 때 모여 회합하던 곳이라는 대청이 마을 한가운데 날아갈듯 앉았고, 군위군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남천고택이 그 옆에 있고, 부림 홍씨 종택도 그 옆이다. 보물 제998호라는 석조여래입상은 문이 잠긴 돌담 안에 말 없이 서 있고, 나그네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겨다본다.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 터를 잡은 곳으로 팔공산 북쪽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기 때문에 밤이 길고, 밤이 길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한밤이라고 했단다. 大栗이라고 적고 '한밤'으로 읽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땅 이름에 이런 사연이 어디 한둘인가. 한밭(大田), 달은터(月隱), 배너미(舟越), 솔내(松川), 아우내(竝川) 배오개(梨峴) 등등. 토박이말을 버리고 한자의 음만을 따르는 셈이니 아쉬운 일이라고 할까.

보면 볼수록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마을 분위기에 젖어 이 골목 저 골목을 오가다가 이웃한 남산리로 간다.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을 본다. 보통 군위 석굴암, 제2석굴암이라고 하며 국보 제109호. 신라 때, 아도화상이 수도하던 석굴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양옆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단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앞선 것으로 그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석굴로 올라가는 계단은 잠겨 있다. 작은 개울 건너에 있는 모전탑 옆에서 석굴암을 바라본다. 어떻게 저런 바위 절벽에 석굴이 있고, 저 석굴 안에 어떻게 불상을 모셨을까. 사진을 찍는다. 석굴 안 부처님 모습이 제대로 나올까. 내 기술로, 휴대폰 사진기로, 잘 나오기를 기대하랴. 젊은 부부가 오더니 자리를 덧깔고, 신발을 벗고, 엎드려 절을 올린다. 경건한 마음이 옮아온다.

석굴암 바로 옆에 양산서원이 있고, 수령 400년이 넘는다는 왕버들 세 그루가 그 이웃에 있고, 안내 표지석이 있다. 길가에는 요란한 간판을 건 음식점 몇이 나란히 있으나 모두 조용하다. 코로나 난리에 공휴일이 아닌 탓이려니.

다시 한밤마을. 산속이지만 하늘은 넓고, 논밭이 넉넉하고, 옹색하지 않다. 남산리와 동산리가 이웃해 있고, 팔공산 꼭대기 군사 시설이 손끝에 잡힌다. 사방을 둘러싼 산이 성처럼 보인다지만, 성 치고는 엄청나게 큰 성이다. 아득한 옛날이라면 하나의 왕국이 들어섰음직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성안 아이들이 모여 재잘거렸었을 초등학교는 7,8년 전에 폐교되었다고, 길가에 나와 있던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다. 주말이면 돌담 구경 오는 사람이 꽤 있단다. 그래 그런지, 번듯한 간판을 내건 식당과 찻집들이 여럿이다. 마을 입구에는 화장실이 딸린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한쪽에는 미나리꽝을 뒤로한 하우스 몇 동이 있다. 하우스 앞에는 미나리를 다듬는 아주머니 두어 분이 앉았고, 안에 있는 식탁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 서넛이 앉았다. 팔공산 자락 깨끗한 물을 이야기할 것이고, 깨끗한 미나리와 삼겹살 얘기가 있을 것이리.

양조장이 보인다. 저도 모르게 다가간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두리번거리다가 주인을 불러 그예 한 병을 산다. 이강주를 골랐다. 군위 이강주. 전주 이강주와 달리 삼지구엽초를 쓴단다.

신라 원효대사가 팔공산 오도암 서당굴에서 수도할 때, 어떤 약초를 먹고 갑자기 힘이 솟았다. 즉시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계림(경주)로 가서 요석공주를 품었다. 삼국유사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설총이 태어났다는 얘긴가? 지팡이를 던져 버리게 했다고 해서 방장초(放杖草)라고 한 그 약초가 바로 삼지구엽초. 또, 김유신은 그 서당굴에서 수련하면서 마신 약수의 효험으로 60을 넘은 나이에 5남 4녀를 낳았다고 한다. 약수 이름이 장군수란다.

군위 이강주를 선전하면서 하는 얘기다. 삼지구엽초와 장군수로 빚은 술이라고. 아, 요놈이 그렇게 좋은 거란 말이지? 가지고 가서 어떻게 마실까. 제대로 마셔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