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이든 바닷가든[마산 무학산]

2021. 4. 1. 23:38경상




고려  중엽, 마산 포구 이씨 집안에 편모슬하에 열일곱 살 큰딸과 둘째 딸, 막내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고질병으로 눕게 되자 살길이 막막해졌다. 고개 너머 감천골 천석꾼 윤 진사에게는 반신불수 벙어리 아들이 있었다. 윤 진사가 큰딸을 며느리로 욕심을 낸다. 어머니는 한사코 만류하나, 큰딸은 가족의 생계와 어머니의 병환 걱정에 그예 시집을 간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혹한 시집살이를 하는 큰딸. 삼 년만에 남편과 함께 친정 나들이에 나선다. 고갯마루에서, 남편은 자신의 흉한 모습을 처가에 보여주기 싫다면서 아내의 등을 떠민다. 친정은 시댁의 도움으로 살림이 넉넉해졌고, 어머니의 병환도 완쾌되었다. 아내가 고갯마루에 되돌아와 보니, 남편은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다. 큰딸은 나이 스물에 청상이 되어 수절하며 한 많은 삶을 살아간다. 어느 해 음력 팔월 열이렛날, 친정이 그리워  고갯마루에 올라온 큰딸. 추석이 지나 큰딸 소식이 궁금한 친정어머니 또한 행인이 많은 고갯마루에 올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딸을 발견하고, 달려가 얼싸안고 한 많은 회포를 푼다. 그로부터 이 고개를 만날고개라 하였고, 해마다 음력 팔월 열이렛날이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올라와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는 곳이 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무학산 자락 만날고개에 유래비가 있다.

2021년 4월 첫날. 만날재공원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무학산에 오르다. 학이 춤을 추며 날아가는 형상이란다.

가는 곳마다 벚꽃은 흐드러지고, 곳곳에 꽃비가 흩날린다. 서서히 무르익는 봄. 여기 남쪽엔 벌써 눈에 띄게 푸른 기운이다. 만날고개유래비 앞에서 잠깐 섰다가 간다. 산길이 오랜만인 듯 괜히 신이 나고, 사뿐사뿐 발걸음이 즐겁다. 양지꽃, 제비꽃, 얼레지, 또 다른 앉은뱅이 봄꽃들. 숲이 무성해지기 전에 햇볕을 받아 꽃을 피우고, 종족을 보존한다던가. 봄볕 아래 반짝이는 아주 작은 몸짓들이 예쁘기 그지없다. 산 아래쪽에선 벌써 이울기 시작하는 진달래는 높이 올라갈수록 지천으로 피어 나그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통합 창원시 이전에는 마산시였고, 마산포구라고 했지. 평지는 안 보이고, 온통 산이다. 산 사이사이에 물이 밀려들었고, 물가에는 건물 숲이 하얗다. 포구에 떠 있는 배들과 점점이 뿌려진 섬들. 산 너머 건너편 산기슭에 번지는 어린 연둣빛도, 점점이 부푸는 하얀 기운들도 봄별 아래 가물가물. 봄 풍경이런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풋풋하다.

산림청 100대 명산. 산길은 이쪽 저쪽 여럿이고, 20여Km 둘레길도 생겼다. 산세도 시원시원 깨끗하고, 사방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시원시원 깨끗하다. 나그네 가슴도 시원시원 깨끗해지는가.

만날재공원(주차장)-만날고개-대곡산-안개약수터-무학산(761.4)-무곡탑약수터-(무학산둘레길)-만날고개-주차장. 10.23Km.

재목이 못 되어서 끝내 자연에서 늙어가네
산골짝이든 바닷가든 어떠리

不材終得老煙霞  澗低何如在海涯

바윗틈에 내린 뿌리도 오래오래 굳건하거늘
세속에서 초탈하는 길이 어찌 멀다 하는가

自能盤石根長固  豈恨凌雲路尙사

둘레길 가에 적혀 있는 최치원의 시 한구절. 벼슬을 내려놓고 곳곳을 떠돌았다더니, 여기에도 왔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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