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산산성

2021. 5. 27. 22:11경상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하늘을 만지면 손이 젖을 것 같은 날씨. 예보에선 비가 좀 내린다고 했지만,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선다. 오늘은 칠곡 가산산성이다.

오는 듯 마는 듯한 빗방울과 동무하여 진남루 앞에 이르렀다. 두리번거리면서 우산을 펼까 말까 하는데, 저쪽에서 서성이던 두 사람은 발길을 돌린다. 나야 뭐 머뭇거릴 일이 없지.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서문 쪽으로 가다. 오는 듯 마는 듯하던 비는 가는 듯 마는 듯 가버리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허옇게 떠다닌다. 가산바위에 올랐다가 서문으로, 북문으로. 북문에서 중성문을 지나 장대터가 있는 가산 산마루에 올랐다가 유선대와 용바위를 보고, 동문으로. 동문에서 돌고 도는 탐방로를 따라 처음 그 자리, 진남루 앞에 서다. 12.37Km.

성의 규모가 엄청 커 보인다. 둘레가 11.1Km라고 하며, 동문 북서쪽이 내성, 남동쪽이 외성이란다. 내성 중간쯤에 중성벽이 있고, 중성문이 있다. 중성벽 북서쪽 골짜기를 에워싼 성곽에 서문과 북문이 있고, 중성벽과 동문 사이 비교적 평평한 자리에 마을 터와 관아 터가 있으며, 관아 터 동쪽으로 산마루에 장대 터가 있다. 남문은 남동쪽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 남쪽에 있고, 문 앞에 주차장이 있다. 한양도성 둘레가 18Km쯤 된다니까 견주어 가늠해 본다. 실제로 성안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거니와, 마을 터로 보이는 널찍한 자리를 보면서 예전 성안 마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무상한 세월을 더듬어 본다. 지금은 죽죽 벋어 미끈한 나무들이 들어선 저기. 유선대와 용바위, 그 주변 낭떠러지 또한 떠다니는 엷은 구름과 어울려 한 풍경을 이룬다.

가산바위 위에 서면 대구시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방이 온통 하얀 구름이다. 그러나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귀한 풍경인가. 선경이라고 할까. 그건 그렇고, 참으로 묘하게 생긴 바위가 아닌가. 성곽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커다랗게 나타나는 집채만 한 바위.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계단을 밟고 올라선 바위 윗면은 어쩜 그리 평평한 것인가. 안내판에 270제곱미터라고 했으니, 거의 반 마지기 넓이가 아닌가. 여기저기에 풀과 나무들도 가꾸면서. 신통스럽도다.

외성 안 탐방로를 구불구불 내려오면서 복수초 군락지 팻말을 본다. 이른 봄 눈 속에서도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 꽤 오래전에 문경 주흘산에서 처음 보았지. 얼음 사이에서 핀다고 얼음새꽃, 금색 술잔 같다고 해서 황금 술잔이라는 별명을 가진 꽃.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이 있다고 한다. 군락지라고 하니 제법 볼 만하겠지? 내년 봄 꽃필 무렵에 다시 와 볼까. 오게 된다면. ㅎㅎ.

살짝 뿌리던 비가 그치는 산, 구불거리는 성곽과 성안 마을 터, 기묘한 바위, 푸른 숲과 멋들어진 바위 낭떠러지를 어루만지면서 흐르는 하얀 구름, 기분좋은 걸음. 오늘 내가 누리는 복이다.

칠곡 가산산성: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902)에 있는 산성. 병자호란을 겪은 후 외침에 대비하여 쌓았고(1640년), 1895년에 폐성. 국내 유일의 삼중 성곽(내성, 외성, 중성벽). 조선시대 성곽 중 한양성곽 다음으로 큰 성곽. 6.25와 1954년 대홍수로 성안 건물들과 성벽이 많이 무너졌으나 나머지는 잘 보전됨. 사적 제2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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