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의 모정[창녕 개비리길 ]

2021. 4. 26. 23:09경상





개: 강(가) / 개(누렁이)
비리: 벼루, 벼랑
개비리길: 강가 절벽에 있는 길 / 개(누렁이)가 찾아낸 길.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개비리길을 걷다. 남지읍 영아지마을에서 용산리에 이르는, 낙동강 가 벼랑길. 마분산 벼랑이다.

먼저, 용산리에서 마분산 산등성이로 길을 잡는다. 개비리길이 생기기 전에, 영아지마을과 용산리를 오가던 길이라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남강, 꽤 널찍하고 잘 정비된 수변 공원, 푸른빛 번지는 산과 들. 맑은 하늘 아래 맑은 풍경이 좌~악 펼쳐진다.

저 남강 물은 함양, 산청, 진주, 의령, 함안 지역을 이리저리 누비면서 흘러와 저렇게 낙동강 물과 어울려 하나가 되고 있다. 여기는 창녕군, 저 건너 남강 왼쪽은 함안, 오른쪽은 의령군이다. 두 물이 만나는 곳, 저기가 기음강이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끈 의병이 강을 건너오는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고 한다.

산 이름도 창진산이었는데, 곽재우 의병이 전사한 말의 무덤을 만들고 나서 마분산이 됐다고 한다. 의병 무덤, 말 무덤, 목동들이 이름을 새겨 놓은 돌들과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들, 창진산 이야기, 6.25 때 낙동강 전투 이야기 등등. 높지 않은 산, 길지 않은 산길에 이야기가 넘쳐난다.

마분산 마루를 넘고 좀 지나서 1Km쯤 거리에 있는 우슬봉을 다녀오고, 영아지전망대에 올랐다가 영아지마을로. 영아지마을에서 처음 그 자리까지 개비리길을 걷는다. 물가 절벽에 걸려 숲에 싸인 길이 참으로 좋다. 예전엔 오솔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법 넓은 산길. 예전에 장길이었고, 등굣길이었던 것을 2015년에 생태탐방로로 정비하였다고 한다.

개비리길에도 옛이야기들이 무성하다. 6.25 전쟁 초기 마지막 방어선으로서의 낙동강 전투 이야기, 홍의장군 붉은 돌 신발 전설, 층층나무와 옥관자 전설, '과일나무 시집보내기' 풍속을 간직하고 있는 감나무, 죽림과 팽나무에 얽힌 이야기 등등.

늘벚나무가 보인다.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지는 벚나무. 실버들마냥 늘어진 가지마다 하얗게 꽃이 핀 모습에 넋을 놓은 적이 있다. 전에, 충주댐 물레방아공원에 커다란 늘벚나무들이 있어 해마다 꽃을 보러 가곤 했었지. 얼마전 물문화관이 들어서면서 다 뽑힌 걸 보고 많이 아쉬워했었지. 한쪽에 작은 것 한두 그루 남았던가. 여기 개비리길 가로수 일부가 바로 그 늘벚나무들이다. 어이 아니 반가우랴. 수양벚나무, 능수벚나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정식 명칭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늘벚'이란 말이 좋더라.

창나루에서 영아지마을까지 산등성이길로 갔다가 개비리길로 처음 그 자리. 그리고 널찍한 수변 공원 한 바퀴. 늦게 피어 아직껏 남은 유채꽃이 한쪽에서 예쁘게 노랗다.

개비리길 전설: 옛날 옛적에, 창녕 영아지마을에 황씨 할아버지가 살았다. 낙동강 가에 있는 마을이다. 할아버지네 누렁이가 새끼 열한 마리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가 눈에 띄게 작고 못나 보인다. 이 지방말로 조리쟁이라고 하였다. 개는 젖이 열 개라나, 조리쟁이는 젖먹이 경쟁에서 늘 밀릴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가 강아지들을 남지 시장에 내다 팔 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 두었다. 산 너머 알개실로 시집간 딸이 와서 조리쟁이를 데려갔다. 누렁이가 하루 한 번씩 알개실로 와서 젖을 먹이는 걸 알게 되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린 날에도 누렁이가 왔다. 어떻게 왔을까, 뒤를 따라 가 본다. 경사가 급하여 눈이 쌓이지 못하는 강가 절벽에 좁은 길이 있는 게 아닌가. 누렁이의 지극히 갸륵한 모정. 그때부터 사람들은 힘들여 높은 산을 넘지 않아도 되었다. 누렁이가 찾은 길, 개가 다닌 비리길, 개비리길.

목동 이름 돌들: 목동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돌에다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마분산 산등성이 길가에 모아놓고, 줄을 쳐 보호하고 있다. 아주 잘 들여다보아야 읽을 수 있다. 정규환 황준선 정호성 진종규 황선도 나무심으 사태 막자 黃東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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