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룡산성[남원]
2021. 10. 21. 22:35ㆍ전라
불도를 좋아하십니까?
예,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중이 되지 않으셨소?
중이 아니고도 불도를 깨닫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럼 유도를 좋아하십니까?
유도를 좋아하지만 유생은 아닙니다.
선도를 좋아합니까?
선도를 하지 않지만 좋아는 하지요.
아니, 뭡니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이, 아무것이나 다 좋아한다고 하니,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스님께서는 두 팔 중 어느 팔을 배척하고, 어느 팔을 사랑하시는지요?
예, 알겠습니다. 몸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군요.
오직 우주의 원리를 좋아할 뿐입니다.
경주 용담정에서 도를 깨친 수운 최제우가 조정과 유림의 박해를 피해 은적암에 머물던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왔었단다.
수운은 교룡산성 안 선국사 뒤쪽 덕밀암을 수리하여 은적암이라 이름하고 머물면서, 동학 사상의 체계를 세웠고, '동학론', '논학문', '안심가', '교훈가', '도수사' 등을 지었다고 한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남원 교룡산성을 찾았다. 홍예문 안으로 들어선다. ○○산장이란 간판을 단 음식점은 휴업 중인지, 적막하기만 하다. 공사판이 벌어진 선국사 절집을 둘러보고, 오른쪽으로 산성의 흔적이 남았을 산등성이로 올라서니, 은적암 터가 있고, 그 이웃에 장고(漿庫) 터가 있다.
은적암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이 머물렀던 동학의 성지이고, 장고 터는 장아찌, 된장, 고추장 등을 보관하던 교룡산성의 장고가 있었던 자리라고, 양쪽에 서 있는 안내판들이 알려준다.
산성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산마루를 지나 얼마큼 가다 보니, 길의 흔적도 사라진다. 발길을 되돌린다. 갈림길에서 선국사로 내려온다. 작은 포클레인 한 대와 연장을 든 서너 사람이 길을 내고 있다. 성곽 흔적을 찾기 어려운 산성 안에서 절집 공사,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교룡산성: 전라북도 남원시 교룡산(518)에 있는 포곡식 산성. 둘레 3Km쯤. 삼국시대 말기 백제가 쌓았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 또는 설인귀가 쌓았다는 설도 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웠고, 임진왜란 때 승병장 처영이 고쳐 쌓았으며, 동학농민군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1988년부터 일부 복원하였다고는 하나, 홍예문 옆으로 일부 복원된 성곽도 거의가 풀숲에 덮여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한때 18가구가 살았었다고 하는 산성 안에는 선국사와 ○○산장 외에 낡고, 무너진 옛집 몇이 보인다. 산성 아래에 축구장, 족구장, 동학혁명 유적 등을 갖춘 국민관광단지가 있다. 체험학습을 나왔는지, 유치원 아이들이 노란 버스에서 내리면서 재잘거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잠깐 들렀다 간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에 있는, 소설가 최명희를 기리는 문학관. 소설 '혼불' 중심 무대 매안마을의 배경이 노봉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노봉리는 삭녕 최씨 집성촌이고, 매안리는 매안 이씨 집성촌이다. 소설 속에는 매안 이씨 종갓집이 있고, 노봉리에는 삭녕 최씨 종갓집이 있다. 문학관의 뼈대는 단연 '혼불'이다. 문학관을 나와 마을로 들어간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그 거리를 거닌다. 매안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그때그때의 정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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