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사지길[원주]
2022. 2. 17. 20:49ㆍ원주굽이길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원주시 부론면사무소 앞에서 단강리까지 택시를 탔다. 미덕상회(미덕슈퍼) 앞이라고 했는데, 상회는 보이지 않는다. "저 자리에 있었는데 없어졌네요." 택시 기사님이 가리키는 자리를 보니, 건물이 철거된 흔적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겠다. "그래도 요긴하게 이용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아쉬워하는 사람이 꽤 있을 거요."
방향을 살피고, 두리번두리번 리본을 찾는다. 그리고 걷는다. 원주둘레길 중 천년사지길이다. 천 년 전에 지어졌다는 절터 두 곳을 지나는 길이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다.
세포 마을을 둘러보면서 운계천 제방길로 들어선다.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로 건너가는 덕은교를 지난다. 얼마 전까지, 여름철에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덕은리 냇바닥 자갈밭이 우거진 풀숲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본다. 물론, 지금은 마른 풀숲이다. 요 아래서 남한강을 만나는 내 이름은 운계천이다.
제방 길에서 내려와 자동차 도로를 잠깐 걷는다. 폐교된 단강분교 안에 '단정'이란 이름을 가진 느티나무가 있다. 조선 임금 단종이 유배 길에 저 그늘 아래서 쉬어 갔다고 한다.
이제 길은 골짜기를 파고 든다. 산속 마을들을 지나고, 야트막한 고갯길도 지나고, 겨울 햇볕 따사로운 오솔길도 지난다. 거돈사지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저수지 제방을 가파르게 기어올라 꽁꽁 언 산골 저수지를 바라본다. 정산저수지다. 쩡~, 쩡, 얼음이 우는 소리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거돈사지에서 법천사지까지 십 리쯤 되는 길은 마을길도 지나고, 얕은 고개를 넘는 산길도 지난다. 두 절터 모두 엄청나게 넓다.
거돈사지: 사적 제168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다. 신라 후기, 9세기 경 지어졌고, 고려 때 확장, 보수되었으며, 조선 전기까지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절터다.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는 삼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과 탑비가 보물로 지정되었고,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터 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건물이 있던 자리도 그렇고, 절터가 꽤 넓어 보인다. 오래 묵은 티가 역력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잎 떨군 나뭇가지 너머 하늘이 시리도록 파랗다. 안내판을 보니, 1,000년이 넘게 살아온 나무다. 절집이 들어서서 없어지기까지 수많은 사연들을 지켜봤겠지.
법천사지: 사적 제466호. 부론면 법천리에 있다. 법천사는 통일신라 때 지어졌고, 임지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현묘탑 가운데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는 지관국사현묘탑은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고 하며, 탑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둘 다 국보로 지정되었고, 탑에는 삼족오, 계수나무, 비천인, 봉황 등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경복궁에 가게 되면 꼭 살펴 보리라. 허균이 다녀갔고, 권람, 한명회, 서거정이 공부하였었고, 오늘은 충주에 사는 이호태가 다녀간다. 건물터가 엄청나게 크다. 자재로 쓰였을 돌들을 잘 정리해 놓았고, 기와 조각들을 무더기 무더기 모아 놓았으며, 당간지주 가까이에, 완공 단계에 이른 커다란 건물이 있다. 유적 전시관이란다.
법천사지 앞을 흐르는 물 이름은 법천천이다. 2Km쯤 더 흐르다가 남한강으로 빨려든다. 그 언저리에 법천소공원이 있고, 그 이웃에 부론초등학교가 있고, 이어서 면사무소가 있다. 법천소공원까지 제방 길을 걷는다. 얼음을 지치는 조무래기들 소리가 들린다. 허허,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