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2. 11:55ㆍ해외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 있는 게르에서 눈을 뜨다. 러시아제 특수차량(푸르공)에 몸을 싣는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끝없이 펼쳐지는 고원 속을 헤집는다.
가끔 차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너울너울 멀어져가는 푸른 풀밭을 보고, 티 하나 없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본다. 가끔씩 부풀어오르는 구름 빛깔은 더없이 희다. 맑은 바람결에 넋을 맡긴다.
고원에서 자라는 온갖 풀이 꽃을 피웠다. 구절초도 보이고, 벌개미취도 보인다. 모두가 땅에 바짝 붙은 난쟁이들이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고, 모래나 자갈 위에 흙이 얇게 덮인 땅이기에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모든 풀도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난쟁이들이 하얗거나 노랗거나 등등,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웠다. 풀잎에도 꽃잎에도 해맑은 햇볕이 내려앉는다. 끝없는 고원을 누비는 바람결도 끊임없이 다녀간다.
고원의 풀밭 여기저기에 양과 염소가 함께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다. 소 떼도 있고, 말 무리도 있고, 야크 떼도 있다. 하늘에서 가끔 독수리가 빙빙 돈다.
몽골의 젖줄이라고 하는 톨강 물줄기를 따라 버드나무 등 키가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물은 어느 쪽에도 언덕을 거느리지 않았다. 물가 평평한 풀밭에 자리를 잡았다. 쪼그려 앉아 물을 움켜 본다. 시원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하늘빛도 물빛도 초원도 물가 숲도 바람도 그리 맑을 수가 없다. 아,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저 좋다, 는 말밖에. 모든 것이 맑다, 는 느낌밖에.
아, 정말 좋다. 끝 모르게 펼쳐지는 풀밭과 그 위로 멀어져가는 하늘과 바람과 물과 물가 숲. 더없이 한가로운 양과 염소 떼, 소 떼, 말 떼. 모든 것이 맑고 또 맑고, 맑다. 시나브로 나를 잊는다. 나를 잊고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는 것도 잊는다.
그래,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산도 들도 숲도 물도 하늘도 바람도, 양도 염소도 소도 말도, 너도, 나도 그냥 하나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하나가 된 것도 잊은 채 한 낮을 보낸다. 일행 모두가 하나된 가슴을 주고받고, 하나가 된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