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8. 11:17ㆍ경상
- 축융봉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청량산을 말하지 마라.
조선 선비 퇴계 이황이 했다는 말이다. 기암괴석 청량산 여러 봉우리의 절경을 가장 잘 바라다볼 수 있는 곳이 축융봉이라는 뜻이 포함되었으리라.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경상북도 봉화군 축융봉에 올랐다. 축융(祝融)이라. 어떤 유래가 있는 말이겠지만, 글자 그대로, '서로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기린다'는 뜻으로 새겨 본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향로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경일봉, 금탑봉, 탁립봉 등 여러 봉우리들이 어우러지는 절경을 바라다본다.
여기 축융봉까지 하여 청량산 육육봉 또는 열두 봉우리라고 한다. 굳이 열둘만을 헤아리랴. 서른에 이른다는 숫자를 굳이 따지랴.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저마다 멋들어진 이웃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한 멋을 이루고 있다. 푸른 숲과 허연 바위들이 어우러지는 저 풍경이여.
그뿐인가. 청량산을 끔찍이 좋아했다는 퇴계를 기리기 위해 후인들이 지었다는 청량정사, 현판 글씨가 고려 공민왕 친필이라는 청량사 유리보전, 신라 승려 원효가 머물렀었다는 응진전, 신라 명필 김생이 머물며 도를 닦았다는 김생굴 등,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몸짓들이 저 속에 있다.
산 아래에선 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굽이친다. 이 또한 한 폭 그림 속 풍경이다.
옛사람들이 말한 존이이화(存異而和), 구동존이(求同存異), 동이지화(同異之和)를 떠올린다. 다름을 유지하되 어울려 화합한다.
입석 주차장에서 시작하였다. 두어 집 남은 산성 마을과 공민왕당을 거쳐 축융봉에 올랐고, 바위 봉우리 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청량산성 성곽을 따라 내려온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여기까지 내려왔었고, 후에, 성안 마을 사람들이 공민왕당을 지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산성을 보수하여 고려 군사들이 주둔했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병사들을 처형하여 성벽 아래로 밀어내곤 했다고 하며, 그 자리를 밀성대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속이고 의주로 도망가는 선조 임금이 생각나고, 6.25 때 서울 시민들을 속이고 한강을 건넌 도망치면서 한강 다리를 끊어버린 대통령 이승만을 떠올린다. 그는 부산까지 피난을 갔었지. 지금 우리의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행태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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