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 23:17ㆍ경상
천하를 평정하고 돌아온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어 와룡산이라고 한다. 물이 많아 수다산이라 했었고, 황룡이 안동호 물을 만나 세상을 평정한다고 하여 황룡도강지, 명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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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일 금요일. 따뜻하던 날씨가 바람과 함께 차가워진다. 하늘은 맑다. 안동 와룡산을 걷는다. 주차장-노적봉-용두봉-까투리봉-안동호, 일월산 조망-산지당 왕복-주차장. 8.67Km.
듣던 대로 옛날이야기가 많다. 산등성이를 따라 기이한 바위들이 흩어져 있고, 선사시대부터 형성됐다는 거석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옛사람들이 곰, 나무, 돌, 태양, 달 등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정령신앙(애니미즘)의 현장이라고 한다.
걸음 순서대로, 대충 간추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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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소원바위. 다산과 풍요를 비는 의례 행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할매소원바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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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성과 북두칠성이 새겨진 고인돌. 삼태성은 하늘의 기운인 양으로 작용하여 혼을 생성하고, 칠성은 땅의 기운인 음으로 작용하여 넋을 생성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넋은 땅으로 돌아간다. 옛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고, 옥황상제가 계신다는 칠성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황금불상의 비밀. 1950년 무렵, 용두 마을 한 청년이 나무를 하던 중, 현사사라는 절터 부근에서 손바닥만 한 불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집안에 두면 우환이 생긴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도로 그 자리에 갖다 두었다. 옻칠을 한 불상은 꽤 묵직했고, 손상된 밑부분이 금색을 띠기도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고인돌 채석장. 희귀한 채석 흔적들이 많았고, 최근 농지 정리 등으로 매몰되거나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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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식총. 조선 시대 후기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많았고, 대낮에도 호랑에게 잡아 먹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을 때, 팔, 다리, 머리, 신발 등을 그 자리에 남기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모아 화장을 하고,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고, 떡시루를 엎어 놓고, 시루 구멍에 창, 쇠꼬챙이, 칼 등을 꽂아 두었다고 한다. 호랑이 몸에 붙은 원혼은 누군가를 호랑이 밥으로 만든 다음에야 호랑이 원혼에서 벗어난다고 믿어 또 다른 재앙을 막기 위한 주술적인 민간신앙 행위라고 한다. 그래야 못된 귀신이 무덤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노적봉과 말바우. 멀리서 보아 곡식이나 쌀가마니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노적봉. 옛날 어느 장수가 타고 다니던 말이 바위로 변했다는 말바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말바우를 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둘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산속 이리저리로 파고드는 안동호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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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바위. 자연석 몸통에 소박하게 다듬은 얼굴을 올려놓은 미륵불과 정화수를 올려놓는 남근석대. 자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도처였고, 바위를 쓰다듬으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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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남근석. 곰의 거시기를 닮았고, 이를 쓰다듬으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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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바위. 물굿과 기우제를 올리는 제단. 불을 피워 연기를 하늘로 올리면 청개구리의 청원과 사람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비가 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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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숭배 사상의 산물로 추정된다는 두꺼비바위. 자손의 번창, 가정의 안녕을 빌었고, 두꺼비를 닮은 선돌 앞에 제단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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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를 모시러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바위. 학가산 부처바위의 명으로 와룡산 부처바위를 모시러 온 보살바위는, 와룡산과 이곳 중생들과 함께하겠다는 부쳐바위를 설득하다가 닭이 울고 날이 새면서 그 앞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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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거북의 머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어 마을에 안녕과 풍요를 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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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들이, 사냥한 까투리를 먹는 곳이라고 하는 까투리바위. 신비롭게도, 바위 위쪽 옆면 구멍에 항상 물이 차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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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당. 1889년, 김용묵이라는 사람이 건립했다고 한다. 자식을 바라는 그의 꿈속에 와룡산 산신령이, 산지당을 짓고 정성을 다 하라. 그렇게 해서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산등성이에 부는 찬바람은 사납고, 맑은 볕엔 따뜻한 기운이 돈다. 뭐하냐 싶으면서도 바위들을 살피고, 설명문을 읽는다. 오랜 내력에 그럴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얘기다.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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