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죽[2005부안마라톤]

2008. 2. 26. 09:12마라톤

도보사랑 길을 떠날 때면 맨 처음에, 뭘 먹을 것인가를 놓고 희희낙락합니다. 한 사람이 운을 떼면 곧 이어 한두 가지 음식이 추천되고, 맞장구를 치면서 시원스럽게 결정이 됩니다. 먹는 즐거움, 삼락(三樂)에 끼진 못했지만 솔직한 즐거움 아닌가 합니다.

오늘, 부안마라톤대회에 다녀왔습니다. 호남지방은 맛의 고장이지요.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부안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허름한 해장국집이었는데, 밥에 앞서 참기름 두른 달걀 반숙이 나오고, 이어서 줄줄이 차려지는 반찬들은 역시 전라도 음식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기 아닌 걸로 고른 콩나물국밥 역시 깔끔했습니다. 차림표에 있는 모주가 참 반가웠는데 참았습니다. 꽤나 아쉽더군요. 그 까이꺼 한 잔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콩나물국밥이나 모주 둘 다 전주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웃에 있어서인지 거기 못지않은 듯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정감 넘치는 사투리도 그렇고요.

마라톤이 끝난 후에 제공되는 먹거리도 좋았습니다. 돼지머리 눌린 고기 몇 쪽과 생두부, 정갈하게 담근 김치, 절편 그리고 막걸리,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이게 부안 막걸린가요? 좋습니다.” 

“예, 한 잔 더 드실래요?”

“이리 와 앉으시오. 같이 먹읍시다.”

“이 것 좀 더 하시고요.”

 

그러다 보니 차갑게 내리는 가을비는 쌀쌀함이 아닌 하나의 운치로 다가왔습니다.

“아, 나가 이 쪽 지리를 쫌 압니다.” 

 

오기 전부터 찍어놨던 백합죽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길을 물었을 때 들은 말입니다.

 

“심포로 가시오 이~잉.”

 

한참을 가다가 또 물으니,

 

“긍께, 쩌쪽으로 혀서 쩌리로 가란 말여.”

 

전라도 사투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맛이라고 느꼈습니다. 음식 맛과 똑같이 맛있는 맛 말입니다.

채석강, 격포! 힘차게 출렁이는 바닷물에 환장하듯, 비릿한 바람에 머리칼을 마구 나부끼면서, 멍게와 해삼을 다랑이에 담아 파는 아주머니 옆에서 소주 한잔 캬~! 하며 바다를 바라보던 곳. 그 해변 맛, 그 바람 맛, 그 멍게 맛, 그 소주 맛이 그리워 이번 대회를 신청했던 것인데 기대했던 만큼 좋았습니다.

백합죽, 정말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포장해서 집에도 갖다 주었지요.

그런데, 저 이렇게 좋은 것들 먹었다고 다른 데 소문 내지 마세요.

                                                                              <제7회부안하프마라톤대회/2005.10.30>

※ 심포항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전국 제일의 백합산지. 전국 유일의 백합 특산지. “육지에서는 지평선, 바다에서는 수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