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09:58ㆍ경상
1. 각화산을 넘어서
8월 14일 이른 아홉 시에 석현리에서 각화사 가는 걸음을 뗀다. 유랑과 이랑. 달아오르는 볕이 푹푹 찌기 시작하니 천지가 화덕이다. 몰아 내쉬는 숨결 속에, 넘쳐흐르는 땀줄기 속에 안에 있던 찌꺼기들이 녹아 나간다. 과수원 사과가 익어가고, 논밭 곡식이 익어가고, 나그네 얼굴이 여물어 간다. 각화사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는 큰나무 가로수가 만들어주는 그늘을 즐긴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을 잠깐 훑어본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686년) 고려 예종 때 중건하였으며, 1910년에 소실된 것을 19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태백산 사고가 이곳 각화산에 지어져 왕조실록을 지켜 보존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단다.
각화산. 태백산 품에 있는 해발 1176 미터 되는 산. 평범한 육산에 숲이 우거져 조망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원한 맛을 만끽한다. 여름철 별미다. 그렇게 정상까지 길을 따라 올라간다. 왕두산-형제봉으로 해서 다시 각화사로 이어지는 길은 가끔가다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다. 그러나 구마계곡을 걷기 위해서는 간기로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적당한 자리를 잡아 기념 맥주를 마신다. 한숨 돌리고 다시 일어서지만, 밟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질 않는다. 멀리 산 아래를 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드디어 맞춤한 능선을 택하여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별천지인 듯한 계곡 맑은 물을 만나 몸을 적시고 나서 점심을 먹는다. 소주도 한 잔씩 한다. 캬~! 이 맛을 누가 알랴.
잘 먹고 일어섰는데 도랑 건너엔 길이 없다. 물을 따라 가는 것도 생각해 보지만 덤불숲을 뚫고 가기가 쉽지 않다. 햐~! ‥‥‥. 얼핏 보니 옛 화전민들의 집터였을 것도 같은데 너덜지대인 걸 보면 그도 아닐 것 같고. 주변 지형을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 동안 궁리하다가 가파른 비탈을 요리조리 기어올라 능선을 따라 걷는다. 가다 보니 길은 또 끊어진다. 수직에 가까운 비탈에서 전전긍긍, 미끄러지다 보니 다시 물이다. 점심을 먹던 협곡이 이리저리 구불거리면서 흘러가고 있는 듯싶다. 우선 몸부터 물에 담근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물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겠다.’ 중간 목적지 ‘간기마을’도 가까울 것 같다. 아! 길이란 따라가는 것인가, 만들어가는 것인가?
2. 구마계곡
드디어 간기마을! 고선계곡-구마계곡이다. 동쪽에는 청옥산이 있고, 서쪽에는 각화산이 있으며, 양쪽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합쳐지는 곳에 마을이 있다. 한두 집이 남아 살고 있는 듯한데, 배추 묘를 심고 있는 일꾼들이 밭에 여럿 있고, 물 가 여기저기 피서객들이 보인다. 공사 중인 한 건물은 기존의 집들보다 덩치가 크다. 모양새로 보아 누군가 앞을 내다보고 짓는 민박용일 것이다. 청옥산 쪽 계곡에 도화동이 좋다는데 그냥 내려가자니 몹시 아쉽다. ‥‥‥.
구마계곡. ‘구마’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아홉 필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도 그 명당을 찾지는 못했고, 관련된 지명만 전하고 있단다. ‘마방’, ‘죽통골’, ‘굴레골’ 등.
이따금 민가와 농토를 거느린 작은 마을도 나타나지만 엄청난 협곡이다. 물 이름은 현동천. 소천면 소재지인 현동리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가기에 붙여진 이름일 게다. 깊게 파인 골짜기에 물과 나란히 굽이치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듯 평탄하게, 길게 이어진다. 길 바로 옆, 좀 밑으로 떨어져 흐르는 물속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걸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녹음기를 아주 크게 틀어놓고 있는 승합차 한 대를 빼고는. 그렇게 길은 좋게 이어진다. 깎아지른 듯하고, 첩첩이 펼쳐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숲. 특히 소나무 빛이 좋다. 예부터 ‘춘양목’으로 이름나 있고, 요즘에도 송이버섯의 고장으로 알려진 걸 실감한다. 또, 머루, 다래가 심심찮게 눈에 띄니 산이 깊다는 걸 알겠다.
3. 뒤풀이
박달령.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에 나오는 박달재가 아니고, 옥돌봉과 선달산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고개다. 고개 남쪽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유명한 오전약수가 있다. 어둑발이 내리는 고개 마루 한쪽에 천막을 치고, 그 옆에다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 옆에는 바람막이 안에 촛불도 하나 켜 놓는다. 소주를 따르고, 고등어 통조림을 김치와 섞어 끓인다. 술잔을 주고받고, 잡담도 주고받고. 껄껄거리고, 아무 생각 없이 모닥불을 바라보기도 한다. 오늘 하루 걸었던 것은 몸에, 옷에 땀으로 남아 있다. 풀벌레 소리에 이따금 산짐승 소리가 섞이고, 산의 숨결은 고요한데, 하현 반달이 하늘에서 함께 한다.
(2006.08.15)
-----------
* 06:00 충주-(승용)-봉화(아침 식사)-08:50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 08:56 석현리-각화사(覺華寺)-각화산-간기마을-고선계곡/구마계곡(12 Km/간기-큰치-노루목-마방-소현-중리-백암)-17:26 봉화군 소천면 고선2리 백암마을
* 백암마을-(트럭)-현동-(버스)-춘양-(택시)-석현-(승용차)-박달령
'경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떡을 먹고[주흘산] (0) | 2008.03.22 |
---|---|
세상에서 가장[도리사에서] (0) | 2008.02.27 |
숲은 길을 묻고 구름은 봉우리를 싸고[수도산-가야산] (0) | 2008.02.27 |
늦은맥이 늦은목이 도래기재 (0) | 2008.02.27 |
고치령을 넘으며 (0) | 2008.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