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의 달이여[부여마라톤]

2008. 2. 27. 10:03마라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아래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그 누가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 조명암 시 김정구 노래 / 꿈꾸는 백마강


부여전국하프마라톤대회. 완주 후에 주체측에서 마련한 잔치국수로 요기를 하고, 궁남지와 정림사지, 부소산성을 돌아봤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궁의 남쪽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에 와서 복원해 놓은 것이다. 못 주변엔 버드나무가 빙 둘러 서서 실가지들을 바람에 맡겨 흔들리고, 못 안에선 여러 개의 분수가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다. 옛날과 오늘날의 어울림이런가. 못 가운데 있는 정자[포룡정]에도 올라보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바깥 둘레엔 맑은 꽃을 피우거나 연밥을 달고 있는, 여러 종류 많은 연(蓮)들이 잎에다가 시나브로 가을빛을 담아가고 있다.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연못가를 지나다가 용신(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 곧 무왕이라고 한다. 멋들어진 연못을 만든 것과 탄생설화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건가?


정림사지에서는 지금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붐비는 인파 저만치에서 오층석탑은 말없이 허공을 지키며 서 있고, 초가을 햇빛은 산들바람을 벗 삼아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막 개관한 정림사지박물관에 들어가 유물을 둘러보고 부소산으로 향한다.


부소산성.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궁궐을 짓고,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며, 많은 유적과 유물을 품고 있다. 백제 말 세 충신―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는 삼충사를 지나고, 해맞이 누각, 영일루를 지나니 군창터다.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불에 탄 쌀이 발견되었단다. 그 앞 매점에 고란주가 있어 한 잔 한다. 은단풍 나무 시원한 그늘에 홀로 앉아 잔을 기울이니 곧 신선놀음이다. 부여읍내는 물론 벌판 멀리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반월루, 산 정상에 있는 사자루, 삼천궁녀의 애달픈 사연을 전해주는 낙화암을 차례로 돌아보고 고란사 앞에서 배를 탄다. 구드래나루에서 내리니 산성 입구까지는 잠깐이다.


백제 최전성기 때의 도읍 사비성, 부여. 망국의 파란을 겪었던 땅, 부여. 고란사 근처 물 위로 솟아난 바위에서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은 후에 사비성을 쳤다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조룡대[용을 낚은 바위]가 됐고, ‘백마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 유람선에서 틀어주는 노래 가사의 배경은 ‘달밤’이다. 사비 시대에 가장 무르익었었다는 백제 예술, 망국의 한, 그리고 달. 반월루(半月樓)에 걸려 있는, 현대인이 적어 놓은 기(記)에 “‥‥‥ 달빛이 깨질세라 강물도 조심조심 ‥‥‥.” 라고 한 것을 보고 부여 땅에 흐르고 있는, 백제인들의 감수성을 생각해 본다. 지금 사자루 자리에 있있던 송월대(送月臺)에서는 왕족들이 지는 달을 보내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고, 내일의 정사를 논했다고 한다. 아! 백제여, 백마강의 달이여.

(200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