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은 고생 속에 있나니[정남진과 천관산]

2008. 2. 27. 10:14전라

기차역이 있고, 모래 해변이 있고,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정동진은 그곳에서 촬영한 어떤 텔레비전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요란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경복궁으로부터 정 동쪽 바닷가에 있다고 해서 ‘정동진’이라고 했다는 유래담은 이제 일반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서쪽과 남쪽과 북쪽은 어디 어디냐?


서쪽은 잘 모르겠고, 북쪽은 중강진, 남쪽은 정남진이란다. 우연히, ‘정남진’과 ‘천관산’을 소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을 가르는 천관산은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고 있다. 그 아래, 장흥읍 건산리 바닷가에 ‘정남진’이 있다.


2007년 2월 5일 월요일, 산에도 오르고 바닷바람도 쐴 겸 길을 나섰다. 모처럼 충주에 남아 있는 가족과 함께. 장흥 정남진까지, 천 리 가까운 거리를 달렸다. 충주-증평나들목-중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동광주나들목-화순-장흥-정남진.


날 저무는 정남진 바닷가는 쓸쓸하기만 하다. 조형물이 좀 있고, 갯벌이 있는 바닷가에 직선 도로가 닦여 있지만, 인적은 드물다. 오는 도중, 가끔 이정표가 보이기는 했지만, 장흥읍이나 관산읍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홍보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 큰 바람을 타진 못한 때문일 게다. 횟집이나 숙박업소도 좀 있다고는 들었지만, 정남진 바닷가에서 먹고 묵을 데가 찾지 못하고 헤맨다. “여름철에 손님이 좀 많고, 겨울엔 주말에나 사람들이 좀 온다.”고, 길에서 만난 한 할머니께서 얘기해 주신다. 오늘은 월요일. 식당도, 여관도 문이 닫혔다. 날은 저물고, ‘그래도 바닷가에서 먹자’고 길을 물어 정환도로 가봤으나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는 식당에서 생선회를 씹으며, 바닷가에 왔다는 감상에 억지로 빠져본다. 아니, 함께 온 식구들에게 ‘바닷가에 왔다’는 걸 강조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어림도 없다. “뭐 이래.”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한 관광 명소를 기대했던, 막내인 근제가 불만 가득한 푸념을 쏟아낸다. 좀 어설프지만, 주인장이 내놓는 방에서 묵고, 내일 아침바다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고, 다시 관산읍으로 나온다.


이튿날, 새벽어둠 속에 채비를 하여 천관산 입구에 이르니 날이 밝아온다. ‘그래, 오늘 산행에서 보상을 받자.’ 산뜻하게 걸음을 옮긴다. 엊저녁 투덜거리던 녀석도 적이 만족스러워 한다. 애 엄마는 낯선 바닷가 산을 오르는 감회가 새로운지 감탄을 연방 터뜨린다. 하늘 향해 여기저기 솟아 있는 기이한 바위들과 사방이 탁 트이게 퍼지는 조망, 수평으로 이어지는 정상부 능선과 억새밭, 억새밭에 숨어 있는 샘물[‘감로천’]까지. 호남 5대 명산에 속한다는 게 헛된 말은 아닌 것 같다. 여운의 끝을 길게 잡고 싶다. 멀리 오면서 힘들어하던 근제와 애 엄마에게 충분한 보람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요즘 들어, 남편 노릇, 애비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나눠 볼까 하고, 이끌고 떠나 봤다. 먼 길이라 고생스러웠을 테고, 바닷가 ‘정남진’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천관산 산행에서 뿌듯해 하는 걸 보니 위안이 된다. 그래도 좀 켕기는 감이 있어 너스레를 떨어본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래 고생 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니라.”

(200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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