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시오리[하일-덕은리]

2008. 2. 27. 12:14충주O

3월 19일 일요일 아침. 하일에서 산으로 들어서니, 덤불 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아침인사를 나누는 멧새들 소리가 맑고 경쾌하다. 1:50,000 지도에 길 표시는 없었지만 옛 나뭇길을 기대했고, 입산에 앞서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도 들었다. 옛 길 흔적을 더듬어 계곡과 능선을 헤매다가 엄정면과 소태면 경계가 되는 능선에 올랐다.


잡목에, 말라서 먼지가 풀풀 나는 낙엽에, 있는 둥 없는 둥 희미한 길을 찾아 오르막을 헐떡거리다 올라선 능선에서 숨을 고르며 먼 풍경을 둘러본다. 추평 쪽 골짜기가 참으로 길고 들이 넓다. 가파르게 올라온 길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차라리 저 쪽 외촌고개를 넘어 귀래 쪽으로 갈 걸.’ 집에 와 지도를 다시 보니, 원곡에서 외촌고개를 넘으면 귀래와 개울 하나 사이에 있는 외촌마을이고, 거기서 부론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다가 은포라는 곳에서 주치리 하남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진다. 거리도 더 짧을 듯 하다. 그래도 “좋다.” 마른 날, 궂은 날 가려서, 골라가면서 살 수가 있나? 뜻밖의 홍수도, 갑작스런 폭설도 닥치면 겪어 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러나 이 산길은 여름엔 안 될 길이다.


저 밑에 보이는 길과 집들을 살펴서 방향을 잡고 한 참을 기웃거리다가 우거진 잡목 속에 숨어 있던 길을 찾아 내려왔다. 소태면 구룡리 오양골. 원주로 가는 19번 국도를 건너 하남으로 이어지는 길을 간다. 황색 중앙선이 그어진 포장도로인데, 자동차는 가물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대 지나가고, 산새들이 고무줄놀이라도 하는 듯 짹짹거리며 건너다닌다.


12;25 덕은리 도착. 세 시간 반 정도. 예상했던 대로다. 때가 되었는지라 식당 간판이 먼저 눈에 띄었으나 시내버스 시간부터 물었다. 네 시 넘어 있단다. 10Km 정도 떨어진 ‘소태 쪽으로 가면서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 타자.’ 송림, 조기암을 지나 복탄리 보건진료소 앞에서 지프승용차를 만나 목행까지 고맙게 왔다. 덤으로 시오리 정도 더 걸은 셈이다. 시청 앞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덕은리.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저 건너가 앙성면 영죽리다. 강 가까이 있는 마을이 강촌이고 그 앞이 덕은이나루라고 지도에는 나와 있다. 그러나 나룻배는 없다.


누군가 봄은 사람들 마음속에서부터 온다고 했듯이 입춘 전부터 내 가슴속엔 봄기운이 꿈틀댔었다. 그게 시샘하는 날씨 탓에 공염불로 묻혔었는데, 이제 완연한 봄볕이고 봄바람이다. 야산엔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어나고, 마른 잎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내미는 풀빛이 여기저기 제법이다. 길 옆 논과 밭에서 풍기는 거름 냄새에 어린시절 봄철을 추억한다. 트랙터가 골을 타고 있는 밭에서는 풋풋한 흙냄새가 일어 콧구멍 속을 촉촉하게 적신다.


[탑평리 하일-산-소태면 구룡리 양짓말-구룡고개-은대-하남-세포-덕은리] [08:50~12:25] / 최랑과 이랑

(200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