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2:53ㆍ충주O
5월 7일 일요일. 10:35. 앙성면 영죽리 덕은이나루터. 날씨는 맑고, 하늘엔 구름이 좀 떠 있다. 나루가 아니고 나루가 있던 곳이라고 하니 나룻배는 당연 없다. 소태면 덕은리를 건너다보면서 손으로 물을 몇 번 움켜 본다. 그리고 출발한다. 아침을 먹고 끙끙거리다가, 누구 같이 가자고 청하지도 못한 채, 훌쩍 나섰다.
앙성면 영죽리(10:35)-영죽고개-용포(앙성/11:50/점심/12:15)-이문고개-대촌(상대촌)-둔터고개-노은면 가신리-노은(14:40)
저 쪽에 있는 베다니교회에서 하룻저녁을 보낸 적이 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하여 전국에서 1,500여 교사가 해임 또는 파면되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는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이 단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충주시내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고 심광보 학생의 고향이 이곳 영죽리이다. 당시 베다니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김재일 목사와 연이 닿게 된, 충주 관내 몇몇 선생님들이 이른바 ‘연수’ 장소로 택하여 모였었다. 흙길이 얼어붙고, 응달에 흰눈이 쌓여 있는 추운 겨울날에.
이번 길엔 고개가 셋이다.
영죽고개는 영죽에서 앙성면 소재지인 용포로 넘는 고개다. 예전엔 영죽에서 앙성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걸어서 넘어 다녔을 것이다. 찔레 순을 따먹으며 고개를 오르는데 여기저기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이다. 길가에 놀게 해 둔 어린아이들이 걱정이 되는지 목소리를 높여 불러대는 엄마들, 할머니들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이문고개는 앙성면에서 음성군 감곡면으로 통한다. 고갯마루에서 감곡 쪽으로 넘지 않고, 지당리 쪽으로 접어들면서 복성저수지 옆을 지나 대촌마을로 들어서니 ‘상대촌마을자랑비’가 있다. 대촌 마을 위가 상대촌이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장호원으로 해서 노은면 가신리에 피신했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곳은 그러니까 장호원에서 노은 가신리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명성황후가 피난을 가던 길. 여기에 ‘배바위’라는 널찍한 바위가 있어 명성황후 일행이 쉬었었다고 비석에 적혀 있다. 그런데 마을 하천 제방을 쌓으면서 ‘배바위’를 깨뜨려 사용했는데, 그 사흘 후에 바위를 깨뜨린 사람이 돌연히 죽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벌을 받아 죽었다고 했단다.
바로 앞에 있는 구멍가게 할아버지에게 여쭈니 가게 자리가 바로 ‘배바위’가 있었던 곳이라면서, “명이 돼서 죽은 건지 벌을 받아 죽었는지 누가 알 거여.” 하신다. 어떤 불신이 깔린 소리로 들린다. 글쎄, 임오군란은 모래와 겨가 섞인 쌀을 급료로 지급하는 일에 항의하는 이들을 구속한 일이 발단이 된 게 아닌가? 당시 정치권의 부정부패, 치졸한 권력다툼을 생각하시는 건가?
명성황후가 피난길에 쉬었던 바위. ‘배바위’란 이름만 남아 있는 그 자리에 들어선 구멍가게. 1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 나그네가 음료수 한 모금으로 잠시 쉬어간다.
둔터고개. 앙성면에서 노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옆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국망산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왜 둔터고개일까?’ 앞의 이야기를 들으니,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이 고개 너머 가신리에 피신했던 사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둔터’라는 말이. ‘국망산’이라는 이름도 명성황후가 산에 올라 서울 쪽을 바라보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개 셋을 넘으면서 서울로 통하는 길 또한 셋을 본다. 영죽리 앞을 흐르는 남한강은 조선시대 아주 중요한 물길이었고, 앙성을 지나가는 국도는 장호원을 지나 서울로 이어진다. 노은을 지나는 도로 또한 법동 고개를 넘어 감곡, 장호원이나 일죽으로 해서 서울로 간다. 아, 이젠 중부내륙고속도가 가장 빠른 길이겠구나.
(200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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