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너머 가을 들판[노은-신니-주덕-대소원]

2008. 2. 27. 12:55충주O

10월 3일 개천절. 그냥 잠깐 바람이나 쐬자고 나선다. ‘충주 둘레나 이어볼까?’ 지난 봄 노은에서 멈췄던 길을 이어서 걷는다. 노은면 안락리, 수상초등학교 건너편 마을길로 들어서니, 말 그대로 ‘안락한’ 마을이 고요하다. 능안고개로 오르는 길에서 알밤을 주워 먹는다. 해마다 벌초 때면 막 벌어지는 알밤을 줍기도 하고 털기도 하면서, 이빨로 껍질을 벗겨내고 맛을 보았는데, 올핸 좀 늦었다. 벌초를 하다가 땅벌에 쏘여 후송됐었기 때문인데, 그 후로도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 생밤은 이렇게 밤나무 아래서, 껍질을 퇴 퇴 뱉어 내고,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고개를 넘으니 포장도로. 산골짝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을볕, 가을바람을 만끽한다.


수상[노은면 안락리] - 능안고개 - 숭선[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 뒷산에 숭선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광종이 어머니 순명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절이다. 귀면와, 치미, 용두 등 기와조각과 분청사기군, 청자완, 백자완 등 도자기, 절집의 터, 우물, 온돌 등이 발굴됐고, 기와 중엔 ‘숭선사(崇善寺)’라고 씌어진 것도 있다고 한다. 순명왕후는 당시 가장 강력했던 지방호족인 충주유씨 가문의 사람이라던가? 마을을 막 벗어나는 길에 꼬마 아이가 깡충깡충 뛰어 내려온다. “몇 학년?” “ 1학년이요.” “친구 집에 갔다 오니?” “아니, 할아버지네요.” 마을 끄트머리에 붙은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안녕!” 하며 손을 흔드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꼬리를 치며 다가오는 강아지에게로 달려간다. 순명왕후도 저 만한 때가 있었겠지. 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는 흔히 ‘용원저수지’라고 부르는데, 지도엔 ‘신덕저수지’라고 되어 있다. 저수지를 왼쪽으로 돌아 할미고개를 넘는다.


용원저수지 - 요도천 둑방 - 용원리[신니면 소재지] - 주덕 - 대소원


저수지 아래서부터 요도천을 따라 걷는다. 신니-주덕-이류면으로 해서 달천벌로 이어지는 너른 들판 저 끝에 대림산-남산-계명산이 부연 연기 속에 가물가물하다. 꽤 너른 들판에 황금물결이 출렁거리고, 바람은 산들산들하다. 아! ‘황금물결.’ 말만 가지고 이런 느낌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가슴이 푹 젖는다.


― 요도천 둑방에 서니


왼쪽은 능안고개 너머 국망산

오른쪽은 가까이에 가섭산

저 멀리엔 대림산과 남산과 계명산.


국망산엔 단풍이 불긋불긋

가섭산에 검은 철탑이 삐쭉삐쭉

대림산 남산 계명산은 연기 속에 가물가물.


요도천 잔물결은 갯바닥에 남실남실

피라미는 떼를 지어 물속에서 희뜩희뜩.


갈대숲 물그림자는 가볍게 일렁일렁

긴 목을 웅크린 두루미는 어정어정.


이리저리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는

한여름 보련산 꼭대기서 놀던 놈들이다.


먼 하늘 누런 들판

갈길 잊는 나그네.

(200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