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7. 12:57ㆍ충주O
10월 28일 07:30. 어김없는 가을 안개 속에 수안보에서 걸음을 뗀다.
초등학교 뒤로 해서 직마리재로 올라가노라니 안개는 서서히 벗어지고, 산과 숲에서는 가을이 푹푹 익어가고 있다.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가 많이 보인다. 머리골이라고 했던가. 벽채는 없이 가로 세로 기둥 몇 개에 지붕을 얹어놓은 곳에서 말 두 필이 여물을 먹고 있다. ‘수안보관광마차’라는 글자가 있는 마차도 두어 대 보인다. ‘아, 저게 수안보 온천에서 운행하는 관광마차로구나.’ 저쪽 마구간에도 어린 말이 몇 필 보인다.
좀더 가다보니 길이 끊긴다. 다행이 나뭇잎이 많이 떨어진 터라 옛날 길 흔적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직마리재를 넘어 임도를 만난다. 고운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멋진 경치에 취한다.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향해 죽죽 내달리고, 가을빛이 분위기를 도우니 금상첨화렷다. 저렇게 멋들어진 경치를 만나면 혼자 보는 것이 아깝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커다란 낭패를 본다. 공이동에서 고운리까지는 없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한 번 넘은 적이 있고, 옛날 사람들이 수안보―공이동을 다녔었다는 말도 들었던 고로 별 걱정 없이, 어림짐작만으로 길을 나섰다. 직마리재를 넘고 임도를 따라가면서, ‘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느니 산허리를 가로 질러 가면 덜 힘들겠지.’ 한 것이 사단이 됐다.
옛길 흔적도 있고 해서 의심 없이 가다보니 꼬부랑재다. 방향과 길이 그 이상 뚜렷한 게 없어 그냥 재를 넘었다. 좀 내려오니 암반으로 이어지는 개울 바닥에 물이 가끔 고여 있고, 낙엽이 떨어져 어지러이 깔려 있다. 그저 좋다, 좋다 하다 보니 마을 어귀.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공이동이 아니다. 골미골.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덕주골로 이어진다. ‘직마리재에서 그냥 고운리로 내려갔다가 갑둥이재를 넘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을 건데 ‥‥‥! 허허, 참.’
가만 생각을 해 보니, 유랑, 최랑과 함께 지릅재에서 공이교까지를 ‘월악서부능선’이라고 이름 지어 놓고 걸었을 제 때 꼬부랑재를 지났었다. 덕주골 매점에서 손수건을 하나 산다. ‘어쨌든 공이동으로 간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트럭 하나를 세우니 바로 선다. 36번국도 공이동 입구에서 내린다. 두어 발짝 떼다 보니 또 한 트럭이 공이동 쪽으로 가면서 태우고 간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한다.
공이동. 옛날에 학교가 하나 있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골짜기다. 아래에서 위까지 십리가 넘는 골짜기에 논밭이 펼쳐 있고 여기저기 마을이 형성돼 있다. ‘전에 저 쪽으로 해서 고운리로 갔었지.’
노인 한 분이 사립문을 나와 서성이고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 터는 저기 마을회관[공이2리마을회관] 있는 자리이고, 그 후에 옮겨져서 한 30여 년 전에 폐교된 학교는 저 아래 송정에 있어. 그냥 비어 있지.”
“여기서 수안보까지 가는 길이 있나요?”
“아, 그거 아주 옛날 얘기고, 지금은 없어. 숲이 우거져서 다닐 수가 없어.”
“그럼, 고운리까지는요?”
“그 쪽도 마찬가지여.”
“‥‥‥ 직마리재‥‥‥.”
“그렇지. 수안보에서 직마리재를 넘어 고론으로 해서 갑둥이재를 넘어 왔지.”
‘꼬부랑재’, ‘골미’라는 이름에 매우 반가워하신다.
“내사리까지도 저 산을 넘어 다녔었지. 그러나 지금은 못 다녀. 길을 찾을 수가 없어.”
공이동엔 역시 감이 많다. 논과 밭에 가을걷이에 바쁜 농부들이 더러 있고, 여기저기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보기가 좋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암수바위는 공이동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길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바위 두 개를 그렇게 이름 지었고, 그 아래 바위바닥에 새겨진 바둑판에는 연안이씨 네 형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성황당도 옛 풍경을 보여주면서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그 분위기를 지키고 있다. 잠깐 동안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사진 몇 장을 찍고 냇물 따라 발길을 흘린다.
골짜기 안에 흩어져 있는 마을 학생들을 위해 국민학교가 있었을 정도인 공이동. 참으로 묘하게 생긴 땅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공이동 골짜기를 걸어 나와 다시 36번 국도를 걷는다. 내사리 진말 마을까지. 다음엔 국도에서 벗어나 재오개 쪽으로 갈 것이다.
상황을 봐서 마즈막재까지도 가 볼까 했던 길을 내사리 진말 마을에서 멈춘다. 수안보―공이동 옛길을 찾는데 실패한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아주 좋은 산속 길을 흡족하게 즐겼으니 기분이 좋다. 가끔 궁금해 하던 골짜기[골미골]를 아주 꼭대기서부터 끄트머리까지를 걸어본 것은 고스란히 덤이 아닌가? 행운이다.
수안보(7:30)-공이동-신당리-내사리 진말 마을(14:30)
(200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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