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서 달려보니 좋구나[제9회서산마라톤대회]

2010. 4. 4. 21:36마라톤

4월 4일 일요일, 서산마라톤대회[하프]

오랜만에 날씨가 맑다. 숨바꼭질하던 봄이 그만 하자고 하면서 온몸을 확 내보이기라도 하는 듯 햇빛이 눈부시다. 맑은 하늘 아래 맑은 공기 속을 헤엄치듯 뛰는 걸음이 상쾌하다. 고남저수지 옆으로 해서 팔봉산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길은 몇 해 전 만리포를 향해 걸어가던 그 길이다. 입춘 무렵이었는데 눈이 내렸고 한 추위 하던 때였다. 저 논두렁 아래서 엉덩이를 까고 속을 비우던 일이 생생하다. 지금 달려가면서 밟는 이 길은 아까부터 머리 속에 그려지는 길 그대로이고, 바라다 보이는 팔봉산도 그 때 그 산이다. 산발치에 늘어 있는 마을과 집과 논밭은 산에 뿌리를 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인 동시에 나무와 바위와 함께 자연스런 산의 한 모습이다. 고개 들어 마주하는 팔봉산은 보고 또 봐도 단정하고 단정하다.

 

17Km 쯤에서부터 다리가 무거워진다. 기다리고 있을 먹을거리들이 자꾸 떠오른다. 잔치국수, 절편, 돼지고기수육, 막걸리, ……. 그렇다고 마음이 바빠지면 몸이 더 힘들어지고, 나중에는 마음까지도 힘겨워지는 법. 마음을 다독이고 지친 몸을 달래는데, 저만치에서 산수유 나무가 노란 연기를 피우며 수줍게 웃는다. 남아 있는 힘을 닥닥 모으니 골인 후에도 좀 남는 듯. 제일 먼저 생맥주 시음장으로 가서 단숨에 한 컵을 비우고, 막걸리 두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나서 국수와 수육과 두부와 절편 그리고 막걸리 한 잔 더. 하하, 누가 빼앗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마셔 대던 것이 우스워진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올 들어 처음 참가한 대회. 나와서 달려보니 좋구나 

 

 

- 대회를 마치고 부춘산 옥녀봉에.

서산시청 뒤에 있는 부춘산의 최고봉이 옥녀봉이다. 해발 187.6m. 신령님의 점지로 태어난 옥녀가 계모의 구박을 받다가 죽은 후에 하느님의 계시로 부춘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산신각이 있고, 제단이 있고, 산책길과 운동기구, 전망대 등 편의시설도 잘 만들어져 있다. 옥녀봉[부춘산]은 서산의 진산이라고 하는데, 올라와서 보니 이 산이 서산 시내를 보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서산 옥녀봉에 대한 이야기들

 

1. 옥녀봉 아래 서산은 예로부터 옥녀탄금형[옥녀가 비파를 타는 형상]이니 금학포란형[금계가 알을 품는 형상]이니 하여 풍수지리상의 길지라고 하였다.

 

2. 옛날에 부춘산 밑에 옥녀라는 여자 아이가 새어머니 밑에서 살고 있었다. 옥녀를 늘 구박하던 새어머니는 어느 한겨울 날 옥녀더러 부춘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꺾어오라고 시켰다. 옥녀가 산에 올라갔을 때, 웬 음악소리가 들렸다. 옥녀가 음악 소리를 따라가니 선녀들이 춤을 추고 있고, 그 주변에 과일과 고사리가 널려 있었다. 새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욕심이 생겨 부춘산에 올라가다가 벌을 받아 죽었고, 옥녀는 부춘산의 신령이 되었다. 그후 부춘산 상봉은 여인이 가야금을 타고 있는 현상으로 변해 갔고, 이 봉우리를 ‘옥녀봉’이라고 하였다.

 

3. 한일합방 무렵에 서산읍에 금광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며칠을 두고 내리는 비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인 금광 간부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때 한 작업 감시원이 이상한 대책을 놰났다. 예쁜 처녀를 제물로 제사를 지내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 하지만 성실하고 착하게 살던 옥녀라는 처녀를 납치해서 제물로 바쳤다. 비가 그치고 작업이 재개되자 금광에서 갑자기 금이 무더기로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소문을 듣고 일본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구렁이가 나타나서 그들을 향해 독기를 내뿜었고, 그것을 호흡한 일본인들은 모두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옥녀가 뱀으로 환생하여 복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옥녀의 어머니는 죽어서도 극락에 들지 못하는 딸을 위하여 백일 동안 천도제를 지냈고, 그 마지막 날 옥녀는 뱀의 탈을 벗고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산봉우리를 옥녀봉이라 고 하였고, 특별히 이 산을 신성시하여 산소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4. 20세기 초, 서산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주민들이 긴급회의를 열었고, 누군가 옥녀봉 명당자리에 묘를 썼음을 발견했다. 주민들이 암장된 산소를 파내 옮기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 날까지 서산시민들은 옥녀봉에 묘를 쓰지 않는다.

 

5. 서산은 주봉이 옥녀봉이어서 남자보다는 여자 중에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또 서산에 처가를 가진 사람들 중에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서산으로 장가들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