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0. 21:40ㆍ마라톤
풀빛이 정말 예쁘다. 나뭇잎이 정말 예쁘다. 5월의 풀빛과 나뭇잎이 정말 맑고 아름답다. 눈앞에 보이는, 저렇게 예쁘고 푸른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 재간이 없어 그냥 5월의 풀빛, 오월의 나뭇잎이 이렇게 예쁘다고만 한다. 햇빛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시원한 바람에 씻겨 신선하게 와 닿는다. 아카시아와 이팝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여기저기 푸른빛에 섞여서 일렁인다. 찔레꽃도,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차려 입은 옛 색시들처럼, 무더기무더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풀빛도, 나뭇잎도, 꽃잎도, 하늘빛도, 햇빛도, 바람결도 모두가 티 하나 없이 예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계절. 그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가 보다. 삼한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의림지, 연못물에 두둥실 떠 있는 여왕.
온 누리가 푸른 바람에 휩싸여 있는 5월 20일, 제12회 제천의림지전국마라톤대회에 참가. 하프코스.
올 들어 두 번째 참가하는 대회다. 대회 때마다 습관처럼 느끼는 준비 부족이지만 오늘은 좀 심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이틀 전 술자리는 빠졌어야 하는 건데. 몸이 좀 무거워진 것 같다. 따지고 보니 이러저런 핑계가 너무 많다. 언제부터인가 게으름과 핑계거리들을 합리화시키는 마음이 생겨났다. 지난 번 대회를 연습 삼아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이번 대회를 연습 삼아 다음 대회에 나간다는. 그럴 듯하다. 히히. 평소 운동하는 기분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달려본다.
달리다 보니 몸과 마음 구석구석이 정리된다.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어수선 했던 머리가 맑아진다. 흙탕물이 맑아지듯 모든 찌꺼기들이 빠져나가고 평온한 상태로 안정된다. 조여 있던 가슴이 부드러워진다. 어지럽게 얽혀 있던 어떤 것들이 가닥을 잡아가듯, 처음에는 좀 아픈 것도 같고 답답한 것도 같던 가슴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드러워지고 자리가 잡히고 거뜬해진다. 또한 내장이 개운해진다. 무진장 먹어대는 음식물 처리에 지쳐 있던 위와 장이 달리는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재정비를 한다. 그리고 팔과 다리, 뼈와 근육들이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살과 뼈들이 한참 동안 움직이다보니 부드러워지고 튼튼해지고 힘이 배게 되니 몸 전체가 사뿐사뿐해진다. 심장의 박동도 빠른 속도, 느린 속도를 새롭게 경험하면서 유연해진다. 소화기관과 호흡기관과 혈관과 팔다리와 몸통이 거뜬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막판에 더위를 느끼면서 다음 대회에 대한 마음이 잠시 흔들렸었지만 골인 후에 다시 다음에 대한 맘을 먹는다.
돌아올 때 터널 대신 넘어선 다릿재. 심하게 구불거리는 옛길이 온통 아카시아 하얀 꽃그늘에 덮여 있다. 자동차를 잠시 세워 두고 코를 벌름벌름, 가슴도 벌름벌름. 향기로운 꿀 냄새가 온 산, 온 골짜기에 가득하다. 천등산 한쪽 품을 주~욱 둘러보는 눈으로 푸른 바람이 들어오고 하얀 바람이 향기를 풍긴다.
* 대회 개막 직전, 이상호 레슬링코치를 만나서 같이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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