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에서 둑방까지[담양 금성산성 - 관방제림]

2013. 4. 7. 16:35전라

2013년 4월 5일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에서 눈을 떴다. 뜬눈으로 뒹굴뒹굴하다가 새벽 4시에 산성으로 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그믐 눈썹달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어둔 산길을 더듬는다. 먼데 마을에 가로등 불빛이 찬 공기 속에 깜박이고 바람결에 봄기운이 실려와 볼을 스친다.

 

보국문을 지나고 충용문을 지나고 우뚝한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어둠 속 멀리에선 가로등이 반짝이고 가까이에 산성의 검은 윤곽이 그려진다. 낮에 같으면 저쪽으로 담양댐이 그림 같다고 하지만, 아쉬워 할 것은 없다. 지금은 지금 이 상황 이분위기를 즐기면 되는 것.

 

되짚어 내려오는 사이에 새벽어스름이 걷힌다. 담양온천리조트로 내려와서 둑방길로 들어선다. 벚나무, 개나리가 무지하게 이어진다. 담양댐에서 흘러오는 영산강 줄기다. 하, 어제는 섬진강 오늘은 영산강이다.

 

금성면에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로 들어섰다가 금월교를 건너 다시 둑방길. 십리가 넘는 개나리 노란 꽃에 이어 관방제림이다.

 

영산강의 홍수로부터 담양성을 지키기 위하여 1648년 담양부사 성이성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으며, 1854년 부사 황종림이 다시 제방을 쌓고 숲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느티나무 팽나무 등 몇 아름씩 되는 큰 나무들이 죽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물이나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 최치원이 나무를 심었다는 함양 상림이 그렇고, 섬진강 하류에 있는 하동 송림이 그렇고, 강릉 경포대 소나무 숲이,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또, 성주 성밖숲 왕버들이 그러하다. 그러한 숲들이 요즘에 와서는 천연기념물 등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새벽 4시에 금성면 원율리에서 시작하여 영산강 둑방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관방제림을 거쳐 온 걸음을 담양버스터미널로 옮겨 마무리한다. 이제 광주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면 충주 집으로 간다. 감사하는 마음이 끝없이 솟아난다.

 

 

 

 

 

 

 

 

 

 

 

 

 

 

* 담양 금성산성 : 사적 제353호(1991년 8월 24일 지정) /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1030-1

 

삼국시대에 처음 쌓았고, 조선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은 후 광해군 2년(1610)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내성도 함께 만들었다. 광해군 14년(1622)에는 내성 안에 관청을 건립하고 효종 4년(1653)에 성 위의 작은 담(여장)을 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외성은 2㎞, 내성은 700m 길이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동학운동(1894) 때 건물이 많이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동·서·남·북문의 터가 남아 있다. 내성 앞에는 국문영 장군의 비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축조(築造)되었다고 전해지며 조선(朝鮮) 태종(太宗) 9년(1409)에 개축(改築)하였고 임진왜란 후 광해군(光海君) 2년(1610)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內城)을 구축하였으며 동 14년(1622)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효종(孝宗) 4년(1653)에 성첩(城堞)을 중수(重修)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외성(外城)은 2km, 내성은 700m에 달하는 석성(石城)으로서 동학운동(東學運動) 때 건물들이 불타 없어진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동, 서, 남, 북문의 터가 아직 남아 있다. 내성 앞에는 마지막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碑)가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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