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8. 23:28ㆍ미얀마라오스
1월 10일.
새벽하늘 북두칠성을 올려다본다.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매일 저녁 바라보던 국자 모양 별자리.
그때 일들이 그리워진다.
꼬끼오~ 새벽닭이 운다.
어릴 적 산골 마을을 깨우던 저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는 달라도 닭 울음소리는 똑 같다.
흉내를 내는 인간의 소리는 제 각각이지만 자연의 소리는 어디에서나 다름이 없다.
일곱 시에 온다던 버스가 여덟 시 반 되어서야 온다. 하루 종일 버스에 앉아 지나치는 풍경을 본다, 가슴이 확 트이는 훤한 벌판이다. 야자나무들이 시원스레 서 있기도 하고, 농작물이 자라기도 한다. 둑방길을 따라 소를 몰고 가는 아이도 있고, 우리네 느티나무처럼 커다란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기도 하다. 학교운동장에서도 마을 공터에서도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목화밭도 있고, 꽤 넓은 해바라기 밭도 있다. 하얀 소가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간판을 단 가게들이 죽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과 자연, 원시와 문명, 개발과 보전, 평화와 편리함 등의 단어들이 짝을 이루어 떠오른다.
지난 해 늦가을에 저 세상으로 간 호인이 생각을 한다. 위암 수술을 하고 1년 만이었다. 30여 년 전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회갑 잔치 떡 벌어지게 차려드리려 했었는데 하면서 서러워하던 호인이가 회갑을 몇 해 남겨두고 어머님 곁으로 갔다. 민제 정제 두 아들에 대한 아비의 마음을 이야기하던 호인이 얼굴이 그리워진다. 두 아이들에게 어떠한 큰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서 이러저러한 일상을 저만치에 두고 바라본다. 먼 나라 낯선 풍경을 바라본다. 너른 들판에 뜨거운 햇볕이 이글거리고 있다. 자연은 흙과 비바람과 공기로 곡물을 길러내고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곡물을 가공해서 끝없이 뻗쳐가는 혀끝의 욕망을 좇아 갖은 기교를 부린다.
하루 종일 달려가야 하는 길, 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점심시간인 것이다. 닭국수를 시켜 먹는다. 당연히 미얀마맥주도 한잔.
끝이 없을 것처럼 펼쳐지는 벌판을 달리던 버스가 어느새 산간 지역으로 들어서서 달린다. 어마어마한 산속이다. 강원도 산골이 어떠니 지리산 덩치가 어떠니 하는 말을 감히 꺼내지를 못하겠다. 아, 저기 소나무가 보인다. 해발 고도가 높아졌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엄청나게 크고 높은 산 속에 길이 있고, 가끔씩 마을이 나타난다.
이제 내리막길인가.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돌고 돌아 서서히 내려가는 길이다. 갈대꽃이 하얗고 메밀꽃이 하얗고 아주까리 열매가 주렁주렁하다. 엄청난 고원에 평화로움이 흐른다. 한국의 가을 정취가 풍긴다.
문명과 개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시간과 과정을 생략하는 개발과 급성장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가.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천박한 문화에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해질 것인가. 아직 원시적인 구석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미얀마의 문명이 서서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존과 편리함이 균형을 이루는 안정되고 성숙한 문화, 여유와 평화가 흐르는 문화를 생각해 본다.
해가 뉘엿뉘엿하고, 멀리에서부터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고 있다. 버스는 이제 평지를 달리고 있다. 농경지가 나타나고, 사탕수수 밭이 보이고, 물길이 보이더니 마을이 나타난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비집던 버스가 멈춰 선다. 인례호수가 있는 낭쉐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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