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촌[춘천 금병산]
2020. 9. 5. 20:18ㆍ강원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 속 이야기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현실을 소재로 꾸민 이야기다. 산만한 현실 세계를 짜임새 있게 재구성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으로 세상의 모습을 반사하고, 독자들은 작품 속에 비친 세상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안목으로 세상의 모습을 파악하여 훌륭한 작품을 쓰고, 세상은 훌륭한 작가와 작품을 길이 기념한다.
2020년 9월 5일 토요일. 강원도 춘천시 금병산. 산 아래 실레 마을은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작가의 고향에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문학촌이 들어섰고, 둘레길이 생겼다. 실레이야기길. 이야기길 일부는 2020.1.1.부터 2021.12.31.까지 휴식년. 분별없는 사람들 등쌀에 몸살이 난 탓이다. 문학촌은 9월 7일까지 임시 휴관. 점순네 닭갈비, 유정 분식, 만무방 등등, 작가 이름, 작품 이름, 작품 속 등장인물 이름을 딴 음식점들 또한 조용하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문학촌에서 바라보아 반시계 방향으로 금병산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돈다. 길이 순하다. 어느새 가을 바람이고, 하늘은 높다. 하얀 도시가 들어선 춘천 분지가 내려다보이고, 흰구름은 뭉게뭉게 짙푸른 산 빛과 어울려 한 풍경을 이룬다. 문학촌-산림욕장/금병초등학교 숲속 교실-산골나그네길-금병산(652)-동백꽃길/잣나무 숲-마을 안길-문학촌. 등산로에도 김유정이 쓴 소설 제목들로 이름이 붙었다. 이른봄에 피는 노오란 동백꽃(생강나무)과 적막한 산골에 퍼지는 햇살을 떠올려 보고, 작품 속 산골 어린 처녀 점순이의 하루를 생각해 본다. 꼭 작중 인물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길을 가는 나그네들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이 조용한 산길을 걸어가는 나는 누구인가.
김유정: 1908년에 태어났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갓 서른 문턱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 5~6년 동안에 30여 편의 소설을 썼고, 수필과 동화도 몇 편 썼다. 나서 자란 실레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했고, 마을 사람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소박한 말씨를 그대로 썼다. 일제 강점기 농촌의 암울하고 궁핍한 삶, 막막한 현실의 파도에 이리 밀리고 저리 몰리면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이야기하면서, 눈물과 웃음으로 삶의 진실을 툭툭 건드렸다. 동백꽃, 봄봄, 산골 나그네, 만무방, 금 따는 콩밭 등등.
옛 금병의숙 터, 지금의 증1리 경로당 앞 金裕貞記績碑(김유정기적비) 아랫 부분에 작가의 육성이 적혀 있어 귀 기울여 더듬어 본다.
-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죄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음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야말로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졸졸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 내가 그리는 新綠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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