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만한 길 험한 길[홍천 팔봉산]
2020. 9. 19. 23:21ㆍ강원
걸을 만한 길과 험한 길
홍천 팔봉산. 산등성이에 오르면 맑디맑은 홍천강 물을 양옆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산. 해발 327.4m. 높지도 크지도 않지만 전국 100대 명산에 들었고, 홍천9경 중 으뜸가는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2020년 9월 20일 토요일. 워낙 유명한 데다가 서울에서 가까운 탓인지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휴일이다. 모두가 마스크 차림이고, 입구에선 연락처를 적고, 발열 체크를 한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람들이 방역에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매표소에서 산등성이에 올라선 다음 몇 발짝 거리에 1봉이 솟아 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앞 이정표엔 '걸을 만한 길'과 '험한 길'로 방향이 나뉜다. 1봉을 거르고 가는 길은 걸은 만하고, 올랐다 가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덟 봉우리를 모두 거르고 가는 길은 없고, 모든 봉우리가 험한 바윗길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이같은 이정표는 다시 보이지 않는다. 하긴 어떤 길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걸을 만하고, 힘들고, 싫증도 나는 게 아닌가. 길은 언제나 그렇게 있을 뿐이고, 사람의 마음이 제멋대로 달라지는 것이지. 오르락내리락, 오늘 팔봉산 길을 걷는 마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재미가 있다.
3봉과 4봉 사이에 좁은 바위틈을 빠지는 곳이 있다. 해산굴이란다. 이이를 낳을 때처럼 힘을 들여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해산굴을 통과하면, 여러 번 통과할수록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하긴 그만큼 운동을 하는 셈이니 건강에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여기까지 험한 길을 올라와야 할 것이고, 좁은 틈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더 많이 움직이고, 힘을 써야 할 것이 아닌가.
십수 년 전에 왔을 때보다 안전 시설이 많이 갖추어져 있다. 무병장수에 좋다는 해산굴을 우회하는 출렁다리가 놓였고, 8봉에서 강가로 내려서는 길은 엄두를 내지 못할 급경사에 보조 시설을 만들어 통행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길이다. 그때, 이런 것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길을 어떻게 지나갔었던가? 정말 험한 길이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길이면서 변함없이 아름다운 경치. 지금도 그지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 홍천강. 길지 않지만, 험한 산길에서 땀 흘려 몸이 개운하고, 맑고 고운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경치에 실컷 눈 호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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