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을 줍다[홍천 봉화산]

2020. 9. 21. 22:34강원



알밤을 주워 먹는다. 올가을 처음으로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주웠다. 이빨로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벗겨 퉤퉤 뱉어내고, 오도독거린다. 쩍쩍 벌어진 밤송이가 주렁주렁한 커다란 밤나무 아래 누런 밤송이가 널렸고, 사이사이에 빤질빤질한 알밤이 떨어져 있다.

성산터 마을. 강원도 홍천 봉화산 품에 안긴 산촌이다. 청정 마을이란 말이 붙어 있는 안내판이 아니라도 맑고 깨끗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걸 느낀다. 길가에서 무상한 세월을 지키는 밤나무에 내려앉은 가을빛도 티 하나 없이 맑고, 마을을 뒤덮은 숲 또한 천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낡은 빈집과 잡초 우거진 묵밭이 있고, 번듯하게 지은 새집이 있다. 꿈을 찾아 도회지로 떠난 자리이고, 번잡한 세상에서 자연의 품을 찾아와 깃을 튼 둥지이다. 코스모스, 맨드라미, 백일홍, 칸나가 피었고, 빨래터를 거느린 박우물이 조용하다.

2020년 9월 21일 월요일. 덤으로 얻은 휴일에 망설임 없이 산을 찾았다. 성산터 마을을 거쳐 봉화산에 오른다. 소나무 숲이 있고, 잣나무 숲이 있고, 참나무 숲이 있고, 여러 가지 나무가 섞인 숲이 있고, 봉화대 터가 있다. 호젓하고, 그윽하다. 산들바람도 즐기고, 땀도 흘리고, 맑은 공기도 마신다.

산마루에서 땀을 닦으면서 좀 더 걷기로 한다. 어림짐작으로 길을 정하여 가다 보니, 길 흔적이 희미하다. 또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정한다. 잠깐씩 헤맨다. 허허,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다. 내가 사는 일이 늘 이렇다. 그렇다고 탓할 일은 아니지. 그렇게 웃는 거지.

흔적이 보이다 말다 하는 길을 용케도 찾아냈다. 그렇게 내려선 마을은 삼마치 큰말. 성산터 마을과 똑같은 분위기다. 예스럽고, 깨끗하고, 맑고.

장전평 쉼터-성산터(마을)-봉화산-삼마치(큰말)-5번국도-장전평 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