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마을을 보다[속초해변]

2021. 1. 16. 22:44강원






왜 걷는가. 이래서 걷는다. 세상 잡일을 잊고, 마음 비워지는 자리에 여유가 차오르고, 은근한 자신감이 솟는다. 까닭 모를 즐거움과 희망이 움튼다.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바닷가를 걷는다. 속초시 외옹치항에서 영금정까지 왕복. 갈 때는 바닷가에 바싹 붙고, 올 때는 잠깐 동안 마을길을 뒤적인다. 12.03Km.

외옹치항에서부터 처음 얼마간은 길이 파도에 망가진 까닭에 우회. 군 경계 초소가 있어 최근에 개방되었고, '바다향기로'란 이름이 붙었고, 나무 데크로 낸 길. 짤막한 일부가 망가져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고개를 넘는 왼쪽 길로 돌아 외옹치해수욕장에 와서 갈 수 있는 데까지 되짚고 나서 영금정을 향한다.

포근한 겨울 봄볕, 맑은 공기에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 검푸른 파도가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부서진다. 바닷물이 본래 저렇게 맑은 것이었던가. 눈이 시리도록.

청호해변 바닷가에 하나호 선장이었던 유정충의 동상이 있다. 한 손으로 키를 잡고, 한 손으로는 무전기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 1990년 3월 1일, 제주도 서남 해상에서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선원 21명을 먼저 탈출시키고, 무전기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배와 함께 수장되었다는 사람. 살신성인한 의인을 기리는 동상이다.

청초호, 속초항, 속초여객터미널, 동명항, 속초등대전망대, 영금정은 가까운 이웃들이다. 등대전망대는 출입금지. 역시 코로나19 때문이다.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렸다는 영금정(靈琴亭)은 돌산이었단다. 일제 때, 속초 개발로 파괴되어 커다란 바위 바닥만 남았고, 지금은 그 위에 정자가 서 있다. 물가 언덕 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있으니, 지금은 '연금정'이 둘인 셈이다. 아니, 셋인가.

바닷가에 올 때마다 해산물만 먹을 것인가. 아바이 마을에서 아바이순대 맛을 본다. 맛있다. 텅 빈, 좁은 가게 안에 주인 할머니 혼자 마스크를 쓰고 앉아 계신다. 이 또한 코로나 시국의 한 풍경이다. 정부에서 뭐 지원하는 게 있나요? 이번에 100만원, 저번에 얼마, 1년 동안 한 400만원 되나. 여기 주민들 거의가 함경도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1세들은 거의가 돌아가셨고, 2세, 3세들이지. 나도 2세야. 하긴, 전쟁 끝난 지 벌써 근 70년 아닌가. 직접 만드시는 오징어순대는 특허를 낸 것이고, 돼지 순대는 저기서 가져온다고 하신다.

갯배를 전에 한 번 타 봤던가. 코로19로 임시 휴업일 수도 있겠다. 계단을 올라가 자동차 도로에 붙은 인도로 물을 건넌다. 건너편도 아바이 마을. 예전엔 갯배가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다는 얘기. 저쪽이 상가 마을이라면 여기는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니, 전쟁 후 피난민들을 위해 마을을 만들 때의 상황이 직접 보았던 것처럼 그려진다. 폭 좁은 골목길 양옆에 주욱 잇대어 지어진 주택들. 대문이랄까, 문을 열면 바로 건넛집 대문이 코에라도 닿을 듯한 마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얼마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는 벽화를 이 동네에서도 본다. 주로 옛날을 소재로 한 그림들. 아, 여기에 아바이 마을의 유래를 적은 글이 있다. 끝까지 읽어 본다.

아바이 마을 유래: 본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한국전쟁 1.4후퇴 때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정착하여 만든 동네로, 세월이 지나면서 함경도 외의 사람들도 마을에 많이 터를 잡았으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민의 60% 정도가 함경도 출신 내지는 2세들이다. 피난민들 위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읍 속초리 5구가 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시 승격과 동시에 청호동으로 바뀌었으며, '청호'라는 명칭은 청초호에서 온 것으로, 청호동에는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아바이 마을 벽화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김)

아바이 마을에서 나와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처음 그 자리까지는 잠깐. 파도는 끊임없이 철썩거리고, 옥가루처럼 부서지는 하얀 소리는 지치는 일이 없다. 오늘, 바닷물과 파도가 저렇게 맑다는 것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