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골[태백]
2021. 5. 6. 23:29ㆍ강원
2021년 5월 6일 목요일. 함백산 지지리골을 헤매고, 탄탄대로 일부를 걷다.
지지리골: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옛날에, 멧돼지를 잡은 사냥꾼들이 현장에서 불을 피우고, 돌판을 달구어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단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를 따서, '지지리를 한다'고 했고, '지지리'를 하는 골짜기라서 지지리골이라고 했단다.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골짜기 화전민들이 지지리도 못 살았기에 그렇게 불렀다는 말도 있다.
31번 국도에서 소도천에 놓인 함태교를 건너니 지지리골 입구다. 둘째 번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다가 왼쪽 골짜기로 들어선 것이 오늘 걸음의 하이라이트.
골짜기 초입 사방댐 안내판에 '지지리골'이란 말이 적혀 있긴 했지만, 길은 더 이상 흔적도 없다. 길이 왜 이 모양이지? 하면서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되돌아서서 길을 다시 찾아보는 게 상식일 텐데, 상식에 어두운 것이 나의 천성인가. 그렇게 헤매는 것이 오히려 즐겁다는 건가.
아직은 잎이 우거지지 않아서 사방을 살피기에 어려움이 없다. 이리저리 길을 내며 살펴보니, 저위에 임도가 보이고, 중장비 소리가 들린다. 그래, 일단 올라가 보자.
공사중인 임도는 험한 산 중턱에 구불구불 걸려 있다. 저 아래 지지리골 입구를 확인하고, 길을 묻는다. 급할 것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걷고, 또 걷는다. 함백산 정상이 요 위라는 걸 느낀다. 산빛은 온통 티없이 깨끗한 연둣빛.
한 굽이만 더, 한 굽이만 더, 하던 끝에 미끄러져 내려선 곳에서 지지리골 자작나무숲을 만나다. 폐광 지역에 가꾼 숲인 듯하고, 한쪽 골짜기엔 하얗게 부연 물이 흐르고, 개울 바닥 돌들이 온통 녹슨 쇠붙이 색깔이다. 그러나 연둣빛으로 피어나는 숲은 맑고 깨끗하다. 자작나무 숲속에 앉아 물을 마신다. 옛 사람들이 멧돼지 고기를 지글지글 굽던 골짜기에 와서 쑥떡으로 요기를 한다.
골짜기 입구로 내려오는 길은 아주 편한 길이다. 녹슨 광차 화분에 비비추가 파랗게 예쁘고, 조팝꽃 무더기가 하얗게 눈부시다. 충주보다 많이 늦은 태백 조팝꽃. 탄탄대로 안내판을 다시 읽고, 걸음을 계속한다.
탄탄대로: 우리나라 주요 탄맥(炭脈)을 품은 태백, 삼척, 정선, 영월, 총 네 개 지역을 '생태 유산'이라는 주제로 연결한 길. 석탄 이야기로 가득한 탄탄(炭炭)한 세상을 만나 보는 길.(안내판 설명)
평평하고 넓은 길로, 아무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탄탄대로(坦坦大路)와 음이 같은 炭炭大路. 탄탄(坦坦)하고 탄탄(炭炭)한 길을 걷는다.
안내판 설명대로, 탄탄(炭炭)한 세상을 만나 보았다. 탄광 사택촌, 채광 장비, 채광 과정, 갱도 모습, 광부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았다. 지극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암흑 굴속에서 목숨을 걸고 검은 땀을 흘리던 광부들과 가족들의 애틋한 삶.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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