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만인가[오대산 비로봉]
2021. 1. 22. 23:13ㆍ강원
2021년 1월 22일 금요일. 참으로 오랜만에 오대산 비로봉(1,563)에 오르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4월 말이나 5월 초쯤, 어느 주말. 직원 야유회라고, 관광버스를 타고 상원사 앞에서 내렸을 때. 버스에 싣고 온 막걸리통을 따라 숲속 물가로 주욱 몰려가 이렇게 저렇게, 삼삼오오 앉아 주거니 받거니 희희닥거리는 행사가 있었다. 그땐 그런 게 있었지. 한두 잔 어울리다가, 졸병에 속하는 서넛이서 슬며시 빠져나와 비로봉에 올랐었다.
무척 가파른 산길이었다. 물가 막걸리 자리에는 막 피어나는 나뭇잎들이 티없이 맑게 살랑거렸건만, 산꼭대기 비로봉에는 아주 두텁게 다져진 눈이 하얗게 깔려 있었고,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리는 각자 주머니에 넣어 온 캔맥주 몇 통을 눈 속에 좀 깊숙이 파묻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한참을 보낸 후에, 눈을 파헤치고, 맥주캔들을 꺼냈다. 멋모르는 사람들이 놀라며 묻는다. 예, 그냥 파 보니까 나오네요. 장난기로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너도나도 바닥 눈을 파는 사람들. 많이 웃었었지. 그때 그 자리에 와서 그 얘기에 또 한바탕 웃는다.
아직 겨울철인 오늘. 그때 그 자리, 오대산 비로봉. 눈은 쌓였으되, 봄철이었던 그때보다는 두께가 훨씬 얇다. 그저께가 대한이었고, 대한 추위도 그런대로 있었건만, 오늘은 봄볕이다. 사방 겨울 풍경이 좌악 펼쳐진다. 산뜻한 공기에, 멀어져 가는 산 바다에 뭉게뭉게 흰구름이 이는 풍경. 시워~언하다. 온통 눈밭. 어디 앉을 만한 데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일행이 깔고 앉았던 비닐 멍석을 물려준다. 얇고 가벼운 휴대용 멍석. 이렇게 요긴한 게 있었구나. 고맙습니다. 도시락을 꺼내고, 한동안 노닥인다. 멍석을 접어 배낭에 넣고, 상왕봉(1,491)으로 향한다. 조심 또 조심하는 코로나 시국에 이 얼마만인가. 걷고 또걷고, 하얀 눈밭에서 뽀드득뽀드득, 이 얼마만인가.
상원사 주차장-상원사-중대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고로봉 갈림길-상원사 주차장. 13.2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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