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산 둘레 한 바퀴[충주]

2021. 1. 9. 22:12충청






20년 1월 9일 토요일. 연 사흘째 이어지는 소한 추위가 매섭다. 대한이 소한네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고 말하는 소한 추위. 오늘도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낮 최고가 영하 9도. 망설이다가 현관문을 연다. 지난주엔 충주 시내 둘레를 걸었고, 오늘은 계명산 둘레를 한 바퀴 돈다. 충주 시내 동쪽에 우뚝 솟은 계명산(774). 시내 뒷산인 셈이다. 충주의 진산이라고도 한다. 산 너머 남한강에 충주댐이 있다.

길은 뻔하다. 전에 도보사랑 도반들과도 함께 걸었었지. 오늘은 이렇게 걷는다. 집-무불통삼거리-금릉초-참빛도시가스-목행공원묘원-학골-절골(나무숲길캠핑장)-용곡-사래실-고개(큰재)-민마루/범동-하종-상종-종뎅이길 입구-마즈막재-안심 마을-금봉대로(푸르지오 앞)-무불통삼거리-집. 26.40Km.

그간 공원묘원은 훨씬 넓어졌고, 이웃한 산업단지도  넓어졌다. 이 추운 날씨에도 부지를 넖히고, 새로운 공장을 짓는 공사가 몇 군데서 벌어지고 있다.

요번엔 학골에서 오솔길 고개를 넘어 절골 깊숙이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서 사래실로 간다. 사래실 마을 입구 성황당은 여전한 모습이고, 마을회관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임시 폐쇄 상태다. 민마루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엔 그때처럼 눈이 덮였고, 바람이 차고, 과수원을 지키는 멍멍이들이 마구 짖어댄다. 이렇게 험한 곳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인다. 사과 한 알 복숭아 한 알 입에 물면서, 그저 맛과 향을 즐기기만 할 것인가.

민마루에서, 마실가시는 할머니를 만나 고개 이름을 여쭙는다. 큰재. 가파르고 높은 고개에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범동 마을 어귀에 체육 훈장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마을을 벗어나면서 만났었던 물문화관은 물 건너 물레방아공원 자리로 옮겨갔다. 이어서 새로운 수로를 만드는 큰 공사판이고, 이제부터는 물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찬 공기에 씻기고, 맑은 햇빛을 받아 맑게 반짝이는 물빛. 저도 모르게 맑아지는 가슴.

마즈막재. 이쪽은 계명산이고, 저쪽은 남산(금봉산)이다. 마즈막재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으로 넓어졌고, 양옆에 인도가 생겼다. 덕분에 편하게 걷는다. 아, 양막에서 안심 마을로 가는 도로가 생기고 있다. 산을 깍아 도로 모양을 만들었고, 중장비 한 대가 저만치에서 도로 바닥 기초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에 방해 될 일은 전혀 없을 것이기에 주저없이 들어선다. 자동차 소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질러가는 셈이다. 안심 마을에서 금봉대로, 푸르지오 삼거리까지는 잠깐이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잠깐에 무불통 삼거리. 이른 아침 그 자리에 다시 오니 한낮이다. 따사롭게 빛나는 볕이 찬 공기를 뚫고 온몸에 와 앉는다.

계명산 전설: 삼국시대 이름은 심항산. 옛날 마고성주의 딸이 산밑을 지나다가 지네에 물려 앓다가 죽었다. 성주가 아무리 애를 써도 워낙 많은 지네를 없앨 수가 없다. 어느날 성주의 꿈에 백발 도사가 나타난다. 지네와 닭이 상극이니, 산에다 닭을 풀어라. 그렇게 하니 지네가 없어졌고, 온 산에 닭 발자국이 찍혔을 것이기에 계족산이라 하였다. 1958년, 시 의회에서 다시 계명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닭의 발(鷄足)은 땅바닥 흙을 흩뿌리는 습성이 있어 충주에서 나는 재물과 인물까지 다른 곳으로 내보내는 주술력이 있을까 염려되는 반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鷄鳴)에는 희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계명산 기슭 어림에는 후삼국 견훤이 왔었다고 한다. 도읍으로 정하고, 궁궐을 짓다가 금봉산 아래 염바다 이야기를 듣고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염바다에 있던 연못 속에 살던 덩치 큰 지렁이가 엄청나게 쏟아붓는 소금 때문에 죽어버렸다는 이야기. 장마철에 연못 둑을 지나다가 지렁이 독에 걸리는 사람들 많았었나. 견훤의 조상이 지렁이라는 설이 있지. 백제 개로왕이 왔었기에 어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